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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성어마당

성어마당(주제별)

동물

성어풀이
鷄口牛後 계구우후
풀이 닭의 입과 소의 꼬리 ⇨ 큰 단체의 꼴찌보다는 작은 단체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 오히려 나음을 이르는 말
용례 교수님은 '鷄口牛後'라는 사자성어를 인용해 대졸자의 취업관에 대해 충고하였다.
鷄卵有骨 계란유골
풀이 달걀에도 뼈가 있음. ⇨ 운수가 나쁜 사람은 모처럼 좋은 기회를 만나도 역시 일이 잘 안 됨을 이르는 말
용례 鷄卵有骨이라고, 나는 왜 하는 일마다 잘 안 되는 걸까⇨
유래 조선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황희(黃喜)는 어질고 검소한 생활을 하였다. 황 정승이 매우 청렴하여 관복도 한 벌로 빨아 입고 장마철에는 집에 비가 샐 지경이었다. 세종 대왕은 황 정승의 생활이 이처럼 가난한 것을 안쓰럽게 여기고 도와줄 방법을 생각하였다. 궁리 끝에 묘안을 얻은 왕은 "내일 아침 일찍 남대문을 열었을 때부터 문을 닫을 때까지 문 안으로 들어오는 물건을 다 사서 황 정승에게 주겠노라"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날은 뜻밖에도 새벽부터 몰아친 폭풍우가 종일토록 멈추지 않아 문을 드나드는 장사치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다가 다 어두워져 문을 닫으려 할 때 무슨 까닭인지 한 시골 영감이 달걀 한 꾸러미를 들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왕은 약속대로 이 달걀을 사서 황희에게 주었다. 그런데 황희가 달걀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삶아먹으려고 하자 달걀이 모두 곯아서 한 알도 먹을 수가 없었다.
鷄肋 계륵
풀이 닭의 갈비 ⇨ 그다지 큰 소용은 없으나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을 이르는 말
용례 그 상품은 경쟁에서 밀려나며 鷄肋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유래 위(魏)나라 조조(曹操)는 촉(蜀)나라 유비(劉備)와 한중(漢中) 땅을 놓고 싸우면서 진퇴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밤늦게 암호를 정하려고 찾아온 부하에게 조조는 그저 계륵(鷄肋)이라고만 할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부하는 돌아가 막료들과 계륵이 무슨 뜻인지 상의하였으나 아무도 영문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주부(主簿)로 있던 양수(楊修)만이 조조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고 짐을 꾸리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이 이유를 묻자 양수는 "무릇 닭의 갈비는 먹음직한 살은 없지만 그냥 버리기는 아까운 것이다. 공은 돌아갈 결정을 내릴 것이다(夫鷄肋 食之則無所得 棄之則如可惜 公歸計決矣)."라고 말하였다. 양수는 계륵이라는 말에서 한중 땅이 계륵과 마찬가지로 버리기는 아깝지만 그렇다고 무리해서 지킬 만큼 대단한 땅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조조의 의중을 파악한 것인데, 과연 그의 말대로 조조는 이튿날 철수 명령을 내렸다.
鷄鳴狗盜 계명구도
풀이 닭의 울음소리를 잘 내는 사람과 개의 흉내를 잘 내는 좀도둑 ⇨ 비굴하게 남을 속이는 하찮은 재주 또는 그런 재주를 가진 사람을 이르는 말
용례 그는 鷄鳴狗盜라는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유래 중국 전국 시대 진나라 소양왕(昭襄王)이 제나라의 귀족 맹상군(孟嘗君)을 초청했는데 진나라 국상이 맹상군의 슬하에는 인재가 많은 것을 시기하여 그를 죽이려 하였다. 이에 맹상군은 식객들을 시켜 진왕에게 선사했던 흰 여우 가죽옷을 훔쳐 내어 진왕이 총애하는 왕비에게 주고 구원을 요청하였다. 왕비는 진왕을 구슬려 맹상군을 돌려보내게 하였다. 그러나 일행이 함곡관(函谷關)에 이르렀을 때 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당시 관문은 닭의 울음소리가 들려야 열리게 되어 있었으므로 닭의 울음소리를 낼 줄 아는 자를 시켜 새벽인 것처럼 꾸며 관문을 빠져나왔다고 한다.
犬馬之勞 견마지로
풀이 개나 말 정도의 하찮은 힘 ⇨ 윗사람에게 충성을 다하는 자신의 노력을 낮추어 이르는 말
용례 犬馬之勞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見蚊拔劍 견문발검
풀이 모기를 보고 칼을 뺌. ⇨ 사소한 일에 크게 성내어 덤빔을 이르는 말
용례 見蚊拔劍이라는 말처럼 자칫 잘못 다루면 자신이 다칠 수도 있다.
犬猿之間 견원지간
풀이 개와 원숭이의 사이 ⇨ 사이가 매우 나쁜 두 관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용례 그와 나는 犬猿之間으로 표현될 만큼 앙숙 관계이다.
犬免之爭 견토지쟁
풀이 개와 토끼의 다툼 ⇨ 두 사람의 싸움에 제삼자가 이익을 봄을 이르는 말
용례 犬免之爭으로 회장이 된 그는 한 달도 못 되어서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矯角殺牛 교각살우
풀이 소의 뿔을 바로잡으려다가 소를 죽임. ⇨ 잘못된 점을 고치려다가 그 방법이나 정도가 지나쳐 오히려 일을 그르침을 이르는 말
용례 矯角殺牛의 우를 범하지 않도록 매사에 신중해야 한다.
유래 중국에서는 예전에 종을 처음 만들 때 뿔이 곧게 나 있고 잘생긴 소의 피를 종에 바르고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한 농부가 제사에 사용할 소의 뿔이 조금 삐뚤어져 있어 균형 있게 바로잡으려고 팽팽하게 뿔을 동여매었더니 뿔이 뿌리째 빠져서 소가 죽었다. '矯角殺牛'는 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조그마한 결점을 고치려다가 수단이 지나쳐서 오히려 큰 손해를 입는 경우를 비유한 말이다.
九牛一毛 구우일모
풀이 아홉 마리의 소 가운데 박힌 하나의 털 ⇨ 매우 많은 것 가운데 극히 적은 수를 이르는 말
용례 이것은 그들이 저지른 단적인 예에 불과한 것이며, 九牛一毛에 지나지 않는다.
九折羊腸 구절양장
풀이 아홉 번 꼬부라진 양의 창자 ⇨ 꼬불꼬불하며 험한 산길을 이르는 말
용례 깊은 산속을 따라 난 그 고갯길은 그야말로 九折羊腸이었다.
群鷄一鶴 군계일학
풀이 닭의 무리 가운데에서 한 마리의 학 ⇨ 많은 사람 가운데서 뛰어난 인물을 이르는 말
용례 그는 이번 경기에서 群鷄一鶴의 활약을 펼쳐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유래 위진(魏晉) 시대, 죽림칠현(竹林七賢)으로 불리는 일곱 명의 선비가 있었다. 이들은 종종 죽림에 모여 노장(老莊)의 허무 사상을 바탕으로 한 청담(淸談)을 즐겨 담론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런데 그중 위(魏)의 중산대부(中散大夫)로 있던 혜강(⇨康)이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고 처형당했다. 그때 혜강에게는 나이가 열 살 밖에 안 되는 아들 혜소가 있었다. 혜소가 성장하자, 당시 죽림칠현의 한 사람이던 이부(吏部)에서 벼슬하던 산도(山濤)가 무제(武帝)에게 다음과 같이 청하였다. "폐하, 아비의 죄는 아들에게 미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혜소가 가진 슬기와 지혜는 춘추 시대 진(晉)나라의 대부 극결에게 결코 뒤지지 않사오니, 그를 비서랑으로 등용하옵소서." 무제는 그가 추천할 만한 사람이라면 더 높은 자리를 줘도 좋다고 말하며 비서승(秘書丞)으로 혜소를 기용했다. 혜소가 처음으로 낙양(洛陽)에 입성하자, 어떤 사람이 칠현의 한 사람인 왕융(王戎)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제 혼잡한 인파 속에서 혜소를 처음 보았습니다. 그의 드높은 기개와 혈기가 마치 '닭의 무리 속에 있는 한 마리의 학[群鷄一鶴)]'과 같더군요."
多岐亡羊 다기망양
풀이 갈림길이 많아 잃어버린 양을 찾지 못함. ⇨ ① 두루 섭렵하기만 하고 전공하는 바가 없어 끝내 성취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 ② 방침이 많아서 도리어 갈 바를 모름.
용례 에너지 정책 추진에 있어 갈림길이 많아 잃어버린 양을 찾지 못한다는 多岐亡羊의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되며,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적 에너지 수급'이 본질적 목표이다.
유래 "열자(列子)"의 '설부편(說符篇)'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양자의 이웃집에서 양 한 마리가 도망을 했다. 이웃 사람은 양을 찾기 위해 자기네 하인뿐 아니라 양자네 하인들까지 동원하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이에 양자가 물었다. "단 한 마리의 양을 잃었는데 어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뒤쫓아가는고." 이웃집 사람이 대답하였다. "도망간 쪽에는 갈림길이 많기 때문이오." 얼마 뒤에, 그들이 피곤한 몸으로 돌아와서 양을 잃었다고 하였다. 양자가 양을 잃은 까닭을 묻자, "갈림길을 가면 또 갈림길이 있어서, 양이 어디 갔는지 모르게 되어 버렸소(多岐亡羊)." 양자는 그 말을 듣고는 묵묵히 앉아 입을 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종일 웃는 얼굴 한번 보이지 않았다. 제자들이 기껏해야 양 한 마리를 잃은 일이요, 더구나 자기의 양도 아닌데, 그렇게 침울해 있는 것은 이상하다 생각하고, 까닭을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뒷날, 한 제자가 그 일에 대해서 묻자, 양자는 "단 한 마리의 양이라 할지라도, 갈림길에서 또 갈림길로 헤매어 들어가서 찾다가는 결국 양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하물며 학문의 길은 어떻겠느냐⇨ 목표를 잃고 무수한 학설들에 빠져 헤맨다면 아무리 노력한들 그 또한 무의미한 것 아니겠느냐." 하였다.
登龍門 등용문
풀이 용문(龍門)에 오름. ⇨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여 크게 출세하게 됨. 또는 그 관문을 이르는 말
용례 각 일간지의 신춘문예 공모는 젊은 소설가들의 登龍門이다.
유래 후한(後漢) 때 관리인 이응(李膺)은 퇴폐한 환관(宦官)들과 맞서 기강을 바로잡으려는 정의파 관료의 영수(領袖)로, 몸가짐이 고결하고 청백하여 당시 청년 관리들은 그와 알게 되는 것을 등용문이라 하여 몹시 자랑으로 여겼다고 한다. "후한서(後漢書)"의 '이응전(李膺傳)'을 보면 "士有被其容接者 名爲登龍門(선비로서 그의 용접을 받는 사람을 이름하여 등용문이라 하였다)."고 적혀 있다. 여기에 나오는 등용문은, '이응전'의 주해(註解)에 따르면 황하(黃河) 상류에 용문이라는 계곡이 있는데, 그 근처에 흐름이 매우 빠른 폭포가 있어 그 밑으로 큰 고기들이 수없이 모여들었으나 오르지 못하였으며, 만일 오르기만 하면 용이 된다고 하였다. 그 후 이 말은 과거에 급제(及第)하는 것을 가리키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여 출세의 문턱에 서는 일을 말하게 되었다.
亡羊補牢 망양보뢰
풀이 양을 잃고 우리를 고침. ⇨ 이미 어떤 일을 실패한 뒤에 뉘우쳐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이르는 말
용례 亡羊補牢라는 말처럼, 건강을 잃고 나서 후회하지 않으려면 평소에 건강에 신경을 쓰고 관리해야 한다.
유래 중국 전국 시대 초(楚)나라에 장신(莊辛)이라는 대신이 있었다. 하루는 초 양왕(襄王)에게 사치하고 음탕하여 국고를 낭비하는 신하들을 멀리하고, 왕 또한 사치한 생활을 그만두고 국사에 전념할 것을 충언하였다. 그러나 왕은 오히려 욕설을 퍼붓고 장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 장신은 결국 조(趙)나라로 갔는데, 5개월 뒤 진나라가 초나라를 침공하여 양왕은 성양으로 망명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양왕은 그제서야 비로소 장신의 말이 옳았음을 깨닫고 조나라에 사람을 보내 그를 불러들였다. 양왕이 이제 어찌해야 하는지를 묻자 장신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토끼를 보고 나서 사냥개를 불러도 늦지 않고, 양이 달아난 뒤에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見兎而顧犬 未爲晩也 亡羊而補牢 未爲遲也).'고 하였습니다. 옛날 탕왕과 무왕은 백 리 땅에서 나라를 일으켰고, 걸왕과 주왕은 천하가 너무 넓어 끝내 멸망했습니다. 이제 초나라가 비록 작지만 긴 것을 잘라 짧은 것을 기우면 수천 리나 되니, 탕왕과 무왕의 백 리 땅과 견줄 바가 아닙니다." 여기서 '亡羊補牢'는 이미 양을 잃은 뒤에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는 뜻으로 쓰였다. 다시 말해 실패 또는 실수를 해도 빨리 뉘우치고 수습하면 늦지 않다는 말이다. 따라서 부정적인 뜻보다는 긍정적인 뜻이 강하다.
三人成虎 삼인성호
풀이 세 사람이 짜면 거리에 범이 나왔다는 거짓말도 꾸밀 수 있음. ⇨ 근거 없는 말이라도 여러 사람이 말하면 곧이듣게 됨을 이르는 말
용례 고사성어 '三人成虎'는 주변의 여러 사람이 자신에 대해 나쁜 말을 하면 결국 그런 평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 준다.
유래 "한비자(韓非子)"의 '내저설(內儲說)'과 "전국책(戰國策)"의 '위책혜왕(魏策惠王)'에 기록된 것으로, 전국 시대 위(魏)나라 혜왕과 중신 방총의 대화 중에 나온 말이다. 위(魏)나라는 조(趙)나라에 태자와 그의 수행원으로서 중신 방총(龐蔥)을 볼모로 보내게 되었다. 방총은 조나라로 떠나기 전에 왕을 알현하고 아뢰었다. "전하, 지금 누가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 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러자 왕은 믿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방총은 다시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 같은 말을 한다면 믿으시겠냐고 물었다. 여전히 왕은 믿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만약 세 사람이 같은 말을 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자 왕은 그때는 믿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방총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날 리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세 사람이 똑같은 말을 하면 호랑이가 나타난 것이 됩니다[夫市之無虎明矣 然而三人言而成虎)]."라고 하였다. 방총은 자신이 멀리 조나라로 떠난 이후 자신을 거짓으로 비방하는 자가 있을 것을 염려하여 이런 말을 한 것이었다. 이에 왕은 어떤 비방도 스스로 보고 듣지 않은 이상 결코 믿지 않을 것이라 대답했다. 그 러나 태자와 방총이 조나라로 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방총을 비방하는 자들이 나타났고 왕은 방총을 의심하게 되었다. 결국 몇 년 후 태자는 위나라로 돌아올 수 있었으나 왕의 의심을 받은 방총은 귀국하지 못하였다. 이후 '三人成虎'는 아무리 근거 없는 말이라도 여러 사람이 또는 여러 번 듣게 되면 곧이듣게 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塞翁之馬 새옹지마
풀이 변방에 사는 늙은이의 말 ⇨ 인생의 길흉화복은 변화가 많아서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말
용례 인간사 塞翁之馬라고 좋은 날이 올 거야.
유래 "회남자(淮南子)"의 '인간훈(人間訓)'에 나오는 이야기로, 북방 국경 근방에 점을 잘 치는 늙은이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그가 기르는 말이 아무런 까닭도 없이 도망쳐 오랑캐들이 사는 국경 너머로 가버렸다. 마을 사람들이 위로하고 동정하자 늙은이는 "이것이 또 무슨 복이 될는지 알겠소." 하고 조금도 낙심하지 않았다. 몇 달 후 뜻밖에도 도망갔던 말이 오랑캐의 좋은 말을 한 필 끌고 돌아오자 마을 사람들이 이것을 축하하였다. 그러자 그 늙은이는 "그것이 또 무슨 화가 될는지 알겠소." 하고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다. 그런데 집에 좋은 말이 생기자 전부터 말 타기를 좋아하던 늙은이의 아들이 그 말을 타고 달리다가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아들이 절름발이가 된 데 대하여 위로하자 늙은이는 "그것이 혹시 복이 될는지 누가 알겠소." 하고 태연한 표정이었다. 그런 지 1년이 지난 후 오랑캐들이 대거하여 쳐들어왔다. 장정들이 활을 들고 싸움터에 나가 모두 전사하였는데 늙은이의 아들만은 절름발이어서 부자가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다.
守株待兎 수주대토
풀이 그루터기를 지켜 토끼를 기다림. ⇨ 한 가지 일에만 얽매여 발전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용례 지나간 시절을 운운하며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조직과 사람은 守株待兎와 같다.
유래 "한비자(韓非子)"의 '오두편(五⇨篇)'에 나오는 말이다. 한비(韓非)는 요순(堯舜)의 이상적인 왕도 정치를 시대에 뒤떨어진 사상이라고 주장하여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송(宋)나라에 한 농부가 있었다. 하루는 밭을 가는데 토끼 한 마리가 달려가더니 밭 가운데 있는 그루터기에 머리를 들이받고 목이 부러져 죽었다. 그것을 본 농부는 토끼가 또 그렇게 달려와서 죽을 줄 알고 밭 갈던 쟁기를 집어던지고 그루터기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토끼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그는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이는 곧 낡은 관습만을 고집하여 지키고, 새로운 시대에 순응하지 못하는 것을 가리킨 말이다.
羊質虎皮 양질호피
풀이 속은 양이고 거죽은 범임. ⇨ 본바탕은 아름답지 아니하면서 겉모양만 꾸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용례 겉모습은 화려해 보이지만 내실은 빈약한 羊質虎皮가 되어서는 안 된다.
유래 "법언(法言)"은 "논어(論語)"의 문체를 모방한 일종의 수상록으로, '오자(吾子)'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혹자가 묻기를 '어떤 사람이 공자의 문하에 들어가 그 안채에 올라 공자의 책상에 엎드리고 공자의 옷을 입는다면 그 사람은 공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하니, 그 무늬는 그렇지만 그 바탕은 아니다'라고 대답하였다. 혹자가 다시 '바탕이란 무엇을 말하는지요.'라고 물으니, '양은 그 몸에 호랑이 가죽을 씌어 놓아도 풀을 보면 좋아서 뜯어 먹고, 승냥이를 만나면 두려워 떨며 자신이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 사실을 잊어버린다(羊質而虎皮, 見草而說, 見豺而戰, 忘其皮之虎矣).'라고 대답하였다." 이는 양이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써서 겉으로는 호랑이처럼 보일지라도 호랑이의 바탕(본질)까지 갖추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호랑이 가죽을 쓰고서도 예전처럼 풀을 뜯어 먹으며, 다른 짐승의 눈에는 자신이 호랑이로 보인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승냥이를 만나면 예전처럼 무서워하며 벌벌 떤다는 것이다. 여기서 유래하여 '羊質虎皮'는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그에 걸맞은 실력이나 실속은 갖추고 있지 못함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되는데, 우리나라 속담의 '빛 좋은 개살구'와 그 의미가 통한다. 또 양의 본질을 바꾸지 못한 채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다고 해서 호랑이가 될 수 없듯이, 본질이 바뀌지 않는 한 변화하지 않음을 비유하는 말로도 사용된다.
養虎遺患 양호유환
풀이 범을 길러서 화근을 남김. ⇨ 화근이 될 것을 길러서 후환을 당하게 됨을 이르는 말
용례 유비를 돕지 않자니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형세요, 돕자니 호랑이를 키워서 후환을 남기는 養虎遺患의 입장이었다.
유래 "사기(史記)"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나오는 말이다. 진(秦)나라 말기 항우와 유방이 천하를 둘로 나누어 서로 천하를 제패하기 위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싸움은 차츰 유방 쪽이 유리한 형세로 되어 가고 있었다. 유방은 이때가 적당하다고 보고 전에 사로잡힌 부친 태공과 부인 여 씨를 돌려보내 달라고 했다. 그러자 항우는 천하를 양분하여 홍구(鴻溝)로부터 서쪽을 한(漢)의 영토로, 동쪽을 초(楚)의 영토로 한다는 조약을 맺고 태공과 여 씨를 풀어 주었다. 그리고는 군대를 철수시켜 동쪽으로 돌아갔다. 유방이 서쪽으로 돌아가려 하자 장량(張良)과 진평(陳平)이 만류했다. "한나라는 이제 천하의 반을 차지했고, 제후들과 인심도 우리 편입니다. 그러나 초나라 군대는 지쳤고 식량도 모자라니 이는 초를 멸망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천하를 탈취해야 합니다. 지금 공격하지 않으면 이는 '호랑이를 길러 화근을 남겨 두는 것'이 됩니다." 유방은 이 말에 수긍하고 즉시 항우를 공격했다. 남을 도와주었다가 오히려 화근을 남긴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魚頭肉尾 어두육미
풀이 물고기는 머리 쪽이 맛이 있고 짐승 고기는 꼬리 쪽이 맛이 있다는 말
용례 우리는 예로부터 魚頭肉尾라 하여 생선의 머리를 즐겨 먹었다.
漁父之利 어부지리
풀이 어부의 이로움 ⇨ 두 사람이 이해관계로 서로 싸우는 사이에 엉뚱한 사람이 애쓰지 않고 가로챈 이익을 이르는 말
용례 이번 선거에서는 여당 후보와 야당 후보의 팽팽한 다툼 속에서 무소속 후보가 漁父之利로 당선되었다.
유래 이 말은 "전국책(戰國策)"의 '연책(燕策)'에서 비롯되었다. 조(趙)나라가 연(燕)나라를 치고자 하였는데, 때마침 연나라에 와 있던 소진(蘇秦)의 아우 소대(蘇代)는 연나라 왕의 부탁을 받고 조나라의 혜문왕(惠文王)을 찾아가 이렇게 설득하였다. "이번에 제가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역수(易水)를 건너오게 되었습니다. 마침 민물조개가 강변에 나와 입을 벌리고 햇볕을 쪼이고 있는데, 황새란 놈이 지나가다 조갯살을 쪼아 먹으려 하자 조개는 깜짝 놀라 입을 오므렸습니다. 그래서 황새는 주둥이를 물리고 말았습니다. 황새는 생각하기를 오늘 내일 비만 오지 않으면 바짝 말라 죽은 조개가 될 것이다 하였고, 조개는 조개대로 오늘 내일 입만 벌려 주지 않으면 죽은 황새가 될 것이다 생각하여 서로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마침 어부가 이 광경을 보고 황새와 조개를 한꺼번에 망태 속에 넣고 말았습니다. 지금 조나라가 연나라를 치려고 하시는데 두 나라가 오래 버티어 백성들이 지치게 되면 강한 진나라가 어부가 될 것을 저는 염려합니다. 그러므로 대왕께서는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소대의 이러한 비유를 들은 혜문왕은 과연 옳은 말이라 하여 연나라 공격 계획을 중지하였다.
烏合之卒 오합지졸
풀이 까마귀가 모인 것처럼 질서가 없이 모인 병졸 ⇨ 임시로 모여들어서 규율이 없고 무질서한 병졸 또는 군중을 이르는 말
용례 그 합창단은 처음에는 악보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烏合之卒이었다.
유래 한(漢)나라 말기에 황실 외척으로서 실권을 잡고 있던 대사마(大司馬) 왕망(王莽)은 평제(平帝)를 시해하고 아직 어린 영(⇨)을 새 황제로 옹립하여 국권을 한손에 틀어쥐었지만, 그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어 삼 년 후에는 어린 황제마저 폐하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국호를 신(新)이라 일컬었다. 그처럼 혁명에는 성공했으나 정치는 형편없어서 전국에 도둑이 들끓고 백성들의 삶은 몹시 어려워 그 원성이 하늘에 닿을 정도였다. 이때 황실 종친인 유수(劉秀)가 군병을 일으켜 왕망을 토멸한 다음 6대 경제(景帝)의 후손인 유현(劉玄)을 새 황제로 옹립했는데, 이 유현이 나중에 후한(後漢)의 시조가 되는 광무제(光武帝)다. 어쨌든 그로써 혼란이 그럭저럭 수습되는 듯했으나, 왕랑(王郞)이란 자가 "나는 성제(成帝)의 아들 유자여(劉子輿)다."라고 떠벌리면서 반란을 일으키고 황제를 자처함에 따라 세상은 또 한 번의 격변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때 상곡(上谷) 태수 경황(耿況)은 아들 경엄(耿⇨)으로 하여금 군대를 이끌고 나가서 유수를 돕도록 했는데, 경엄이 관군의 집결지로 가는 도중에 약간의 말썽이 생겼다. 하급 장수인 손창(孫倉)과 위포(衛包)가 행군을 멈추고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유자여야말로 한왕조의 정통이라 합니다. 그를 따르지 않고 누구를 따른단 말입니까⇨" 그 말에 격분한 경엄은 칼을 빼들고 소리쳤다. "가당찮은 소리 마라! 왕랑이 황제의 아들을 사칭해 난을 일으키고 있지만, 놈은 한낱 도적일 뿐이다. 내가 이제 장안(長安)의 관군과 힘을 합쳐 공격하면 그따위 '烏合之衆'은 마른 나뭇가지보다 힘없이 꺾이고 말 것이다. 지금 너희들이 사리 분별을 못해 그런 소리를 하는데, 역적의 한패가 되어 멸문지화를 당하고 싶으냐⇨" 손창과 위포는 경엄의 위세에 질려 입을 다물고 말았지만, 그 날 밤 둘은 작당하여 끝내 왕랑의 군진으로 달아나고 말았다. 그러나 경엄은 그들의 도주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고, 왕랑 토벌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다음 나중에 건위대장군(建威大將軍)이란 칭호를 받았다. 이 '烏合之衆'이란 말이 요즘에 와서는 '烏合之卒'로 쓰이고 있다.
龍頭蛇尾 용두사미
풀이 용의 머리와 뱀의 꼬리 ⇨ 처음은 왕성하나 끝이 부진한 현상을 이르는 말
용례 그 모임은 거창하게 이름만 지어 놓고 龍頭蛇尾로 끝나 버렸다.
유래 이 말은 송(宋)나라 사람 환오극근(⇨悟克勤)이 쓴 "벽암록"에 나온다. 육주(陸州) 에 세워진 용흥사(龍興寺)에는 이름난 스님인 진존숙(陳尊宿)이 있었다. 그는 도를 깨치러 절을 떠나 여기저기 방랑하면서 나그네를 위해서 짚신을 삼아 길에 걸어 두고 다녔다고 한다. 진존숙이 나이 들었을 때의 일이다. 불교에는 상대방의 도를 알아보기 위해 선문답(禪問答)을 주고받는 것이 있는데 어느 날 진존숙이 화두를 던지자 갑자기 상대방이 으악 하고 큰소리를 치고 나왔다. "거참, 한번 당했는걸." 진존숙이 투덜대자 상대는 또 한 번 큰소리로 나왔다. 진존숙이 상대를 보니 호흡이 꽤 깊은 걸로 보아 상당한 수양을 쌓은 듯하였으나 찬찬히 살펴보니 어쩐지 수상한 구석도 엿보였다. '이 중이 그럴 듯하지만 역시 참으로 도를 깨친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아(似則似 是則未是). 단지 용의 머리에 뱀의 꼬리가 아닐까 의심스러운걸(只恐龍頭蛇尾).' 진존숙이 이렇게 생각하고 상대에게 물었다. "그대의 호령하는 위세는 좋은데, 소리를 외친 후에는 무엇으로 마무리를 질 것인가⇨" 그러자 상대는 그만 뱀의 꼬리를 내밀듯이 슬그머니 답변을 피하고 말았다. 龍頭蛇尾란, 시작은 거창하게 하다가 마무리에서 흐지부지함을 말하는데 이 말과 정반대되는 뜻으로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다. 흔히 과감한 사람들은 시작은 잘하나 끝을 맺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거나 소심한 사람은 시작부터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이 세상에 성공하는 사람이 적은 까닭은 시작부터 끝까지 잘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龍虎相搏 용호상박
풀이 용과 범이 서로 싸움. ⇨ 강자끼리 서로 싸움을 이르는 말
용례 3사에서 선보일 신작들은 아직 뚜껑을 열기 전이지만 龍虎相搏을 예고하고 있다.
유래 이백(李白)의 시에서 유래한 말이다. 중국 삼국 시대 위(魏)나라의 조조(曹操)와 관중(關中) 패권을 다툰 장수는 '마초(馬超)'인데, 용은 조조, 범은 마초에 비유하기도 한다. 손권(孫權)·유비(劉備)의 연합군과 싸워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패한 조조는 동관(潼關)에서 마초 군대와 대치하였으나 결국 싸움에서 이겼다.
鳥足之血 조족지혈
풀이 새 발의 피 ⇨ 매우 적은 분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용례 이번 일은 그들이 저지른 수많은 범죄 중 鳥足之血에 불과하다.
指鹿爲馬 지록위마
풀이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함. ⇨ ①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마음대로 함을 이르는 말 ② 모순된 것을 끝까지 우겨서 남을 속이려는 짓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용례 윗사람이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만들어 아랫사람들을 권위에 굴복하게 하다니, 指鹿爲馬가 따로 없구나.
유래 "사기(史記)"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 전한다. 조고(趙高)가 모반을 일으키려 하였다. 그러나 여러 신하들이 따라 주지 않을 것이 두려웠다. 이들을 시험하기 위해, 사슴을 2세 황제에게 바치면서 말하였다. "이것은 말입니다." 2세 황제가 웃으며, "승상이 잘못 본 것이오. 사슴을 일러 말이라 하오⇨" 하였다[趙高欲爲亂 恐群臣不聽 乃先設驗 持 鹿獻於二世曰馬也 二世笑曰 丞相誤邪 謂鹿爲馬]. 진나라 시황제가 죽자, 환관 조고는 거짓 조서를 꾸며 태자 부소(扶蘇)를 죽이고 어린 호해(胡亥)로 2세 황제를 삼았다. 호해는 "천하의 모든 쾌락을 마음껏 즐기며 살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어리석었기 때문이다. 조고는 이 호해를 이용하여 경쟁 관계에 있던 승상 이사(李斯)를 비롯한 많은 신하들을 죽이고 승상의 자리에 올라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그러자 역심이 생긴 조고가 자기를 반대하는 중신들을 가려 내기 위해 이와 같은 행동을 하였던 것이다. 호해가 말을 마치고 좌우의 신하들을 둘러 보자, 잠자코 있는 사람보다 "그렇다."고 긍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아니다."고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조고는 부정하는 사람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죄를 씌워 죽였다. 그 후 궁중에는 조고의 말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후로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을 비유할 때 이 고사가 흔히 인용되었다. 이것이 요즘에 와서는 그 뜻이 확대되어 모순된 것을 끝까지 우겨 남을 속인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天高馬肥 천고마비
풀이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찜. ⇨ 하늘이 맑아 높푸르게 보이고 온갖 곡식이 익는 가을철을 이르는 말
용례 바야흐로 天高馬肥의 계절이다.
유래 이 말의 원말은 '秋高塞馬肥'로, 당나라 초기의 시인 두심언(杜審言)의 시에서 나왔다. 두심언은 진(晉)나라의 명장이고 학자였던 두예(杜預)의 자손이며, 성당(盛唐)의 대시인 두보(杜甫)의 조부이다. 젊어서부터 문명(文名)을 떨쳐, 소미도(蘇味道), 이교(李嶠), 최융(崔融) 등과 함께 '문장사우(文章四友)'라고 불렸다. 다음 시는 당나라 중종(中宗) 때, 두심언이 참군(參軍)으로 북녘에 가 있는 친구 소미도가 하루빨리 장안(長安)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며 지은 것이다. 구름은 깨끗한데 요사스런 별이 떨어지고[雲淨妖星落], / 가을 하늘이 높으니 변방의 말이 살찌는구나[秋高塞馬肥]. / 말안장에 의지하여 영웅의 칼을 움직이고[馬鞍雄劍動], / 붓을 휘두르니 격문이 날아온다[搖筆羽書飛]. 이 시는 변방의 정경과 당나라 군대의 빛나는 승전보를 전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秋高塞馬肥'라는 구절은 당군의 승리를 가을날에 비유한 것이다. 따라서 '秋高馬肥'는 아주 좋은 가을 날씨를 표현하는 말로 쓰였다.
千軍萬馬 천군만마
풀이 천 명의 군사와 만 마리의 군마 ⇨ 아주 많은 수의 군사와 군마를 이르는 말
용례 네가 나를 도와준다니 千軍萬馬를 얻은 것 같다.
兎死狗烹 토사구팽
풀이 토끼가 죽으면 토끼를 잡던 사냥개도 필요 없게 되어 주인에게 삶아 먹히게 됨. ⇨ 필요할 때는 쓰고 필요 없을 때는 야박하게 버리는 경우를 이르는 말
용례 그는 윗사람을 위해 충실한 '사냥개' 역할을 했지만 결국은 兎死狗烹을 당하였다.
유래 이 고사성어는 유방(劉邦)을 도와 한(漢)나라를 세운 한신(韓信)의 이야기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중국을 통일한 유방은 일등 공신 한신을 초왕(楚王)으로 봉하였으나, 그의 세력이 언젠가는 자신에게 도전하지 않을까 염려하였다. 그러던 차에 유방과 패권을 다투었던 항우(項羽)의 부하 종리매(鐘離⇨)가 옛 친구인 한신에게 몸을 의탁하였다. 일찍이 전투에서 종리매에게 괴로움을 당하였던 유방은 종리매가 초나라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한신은 옛 친구를 배반할 수 없어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이 사실을 상소한 자가 있어 유방은 진평(陳平)과 상의한 뒤 그의 책략에 따라 초나라의 운몽(雲夢)에 순행한다는 구실로 제후들을 초나라 서쪽 경계인 진(陳)나라에 모이게 하였다. 한신은 자신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여 자진해서 배알하려고 하였는데, 부하들이 종리매의 목을 베어 가지고 가면 황제가 기뻐할 것이라는 계책을 진언하였다. 한신이 종리매에게 이 일을 전하자 종리매는 "유방이 초(楚)를 침범하지 못하는 것은 자네 밑에 내가 있기 때문이네. 그런데 자네가 나를 죽여 유방에게 바친다면 자네도 얼마 안 가서 당할 것일세. 자네의 생각이 그 정도라니 내가 정말 잘못 보았네. 자네는 남의 장(長)이 될 그릇은 아니군. 좋아, 내가 죽어 주지."하고는 스스로 목을 베어 자결하였다. 한신은 종리매의 목을 가지고 가서 유방에게 바쳤으나 유방은 한신을 포박하였으며, 모반의 진상을 조사한 뒤 혐의가 없자 초왕에서 회음후(淮陰侯)로 강등하였다. 이에 한신은 "과연 사람들의 말과 같도다. 교활한 토끼를 다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고, 새 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도 감추어지며, 적국이 타파되면 모신도 망한다. 천하가 평정되고 나니 나도 마땅히 '팽' 당하는구나(果若人言. 狡兎死良狗烹, 飛鳥盡良弓藏. 敵國破謀臣亡. 天下已定, 我固當烹)."라고 한탄하며 유방을 원망하였다고 한다. 이 고사는 "사기(史記)"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보인다. 여기서 유래하여 '兎死狗烹'은 토끼 사냥이 끝난 뒤 사냥개를 삶아 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필요할 때는 쓰다가 필요 없을 때는 야박하게 버리는 경우를 빗대어 이르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狐假虎威 호가호위
풀이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림. ⇨ 남의 권세를 빌려 위세를 부림.
용례 그는 狐假虎威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유래 전한(前漢) 시대의 유향(劉向)이 편찬한 "전국책(戰國策)"의 '초책(楚策)'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기원전 4세기 초, 초(楚)나라 선왕(宣王) 때의 일이다. 하루는 선왕이 신하들에게 "듣자하니, 위나라를 비롯하여 북방의 여러 나라들이 우리 재상 소해휼(昭奚恤)을 두려워하고 있다는데 그게 사실이오⇨" 하고 물었다. 이때, 위나라 출신인 강을(江乙)이란 변사가 초나라 선왕 밑에서 벼슬을 하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왕족이자 명재상으로 명망 높은 소해휼이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강을은 이야말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얼른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북방의 여러 나라들이 어찌 한 나라의 재상에 불과한 소해휼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번은 호랑이가 여우를 잡았습니다. 그러자 교활한 여우가 호랑이에게 말하기를 '나는 천제(天帝)의 명을 받고 내려온 사자(使者)다. 네가 나를 잡아먹으면 나를 백수의 왕으로 정하신 천제의 명을 어 기는 것이니 천벌을 받게 될 거다. 만약 내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내가 앞장설 테니 내 뒤를 따라와 봐라. 나를 보고 달아나지 않는 짐승은 하나도 없을 테니'라고 했습니다. 그 래서 호랑이는 여우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그랬더니 과연 여우의 말대로 만나는 짐승마 다 모두 달아나기에 바빴습니다. 사실 짐승들을 달아나게 한 것은 여우 뒤에 따라오고 있던 호랑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호랑이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북방의 여러 나라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일개 재상에 불과한 소해휼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초나라의 병력, 곧 임금님의 강한 군사력입니다." 이 고사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라는 말이 나왔으며, 오늘날 이 말은 주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권위를 빌려 허세를 부리는 경우에 사용된다.
虎視耽耽 호시탐탐
풀이 범이 눈을 부릅뜨고 먹이를 노려봄. ⇨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하여 형세를 살피며 가만히 기회를 엿봄. 또는 그런 모양
용례 적들이 虎視耽耽 침략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蛇添足 화사첨족
풀이 뱀을 다 그리고 나서 있지도 아니한 발을 덧붙여 그려 넣음. ⇨ 쓸데없는 군짓을 하여 도리어 잘못되게 함을 이르는 말
용례 충고를 하려 하였으나 그런 것도 쓸데없는 ⇨蛇添足처럼 느껴져, 아예 염두에 두지 않기로 하였다.
유래 이 이야기는 "전국책(戰國策)"의 '제책(齊策)'에 나오는 말이다. 초(楚)나라의 영윤(令尹) 소양(昭陽)이 위(衛)나라를 치고 다시 제(齊)나라를 치려 할 때, 제나라의 세객(說客) 진진(陳軫)이 소양을 찾아와 다음과 같이 설복할 때 나오는 말이다. "여러 사람이 술 한 대접을 놓고 내기를 하였는데, 그것은 땅바닥에 뱀을 먼저 그리는 사람이 그 술을 마시기로 한 것입니다. 한 사람이 뱀을 제일 먼저 그리고 왼쪽 손으로 술대접을 들면서 오른손으로 뱀의 발까지 그리면서 '나는 발까지 그렸다'고 뽐내며 술을 마시려 하였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뱀 그림을 끝내고 그 술잔을 빼앗아 들며 '뱀에는 원래 발이 없다. 그런데 자네는 발까지 그렸으니 그건 뱀이 아니다'라고 하며 술을 마셔 버렸습니다. 장군은 지금 위나라를 치고 다시 제나라를 치려고 하시는데 나라의 최고 벼슬에 계시는 장군이 거기서 더 얻을 것이 무엇이며, 만에 하나라도 제나라와의 싸움에서 실수를 하게 된다면 뱀의 발을 그리려다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과 똑같은 결과가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소양은 과연 옳은 말이라 여겨 군대를 철수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