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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성어마당

성어마당(주제별)

속임수

성어풀이
鷄鳴狗盜 계명구도
풀이 닭의 울음소리를 잘 내는 사람과 개의 흉내를 잘 내는 좀도둑 ⇨ 비굴하게 남을 속이는 하찮은 재주 또는 그런 재주를 가진 사람을 이르는 말
용례 그는 鷄鳴狗盜라는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유래 중국 전국 시대 진나라 소양왕(昭襄王)이 제나라의 귀족 맹상군(孟嘗君)을 초청했는데 진나라 국상이 맹상군의 슬하에는 인재가 많은 것을 시기하여 그를 죽이려 하였다. 이에 맹상군은 식객들을 시켜 진왕에게 선사했던 흰 여우 가죽옷을 훔쳐 내어 진왕이 총애하는 왕비에게 주고 구원을 요청하였다. 왕비는 진왕을 구슬려 맹상군을 돌려보내게 하였다. 그러나 일행이 함곡관(函谷關)에 이르렀을 때 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당시 관문은 닭의 울음소리가 들려야 열리게 되어 있었으므로 닭의 울음소리를 낼 줄 아는 자를 시켜 새벽인 것처럼 꾸며 관문을 빠져나왔다고 한다.
面從腹背 면종복배
풀이 눈앞에서는 복종하나, 뒤에서는 배반함. ⇨ 겉으로는 복종하는 체하면서 내심으로는 배반함.
용례 입에 꿀을 머금고 뱃속에는 칼을 품는 그들의 面從腹背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似而非 사이비
풀이 겉으로는 비슷하나 속은 완전히 다름. 또는 그런 것.
용례 似而非 종교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유래 "맹자(孟子)"의 '진심편(盡心篇)'과 "논어(論語)"의 '양화편(陽貨篇)'에 나오는 말이다. 어느 날 맹자에게 제자 만장(萬章)이 찾아와 "한 마을 사람들이 향원(鄕原:사이비 군자)을 모두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하면 그가 어디를 가더라도 훌륭한 사람일 터인데 유독 공자만 그를 '덕을 해치는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이유가 무엇인지요."라고 물었다. 맹자는 그를 비난하려고 하여도 비난할 것이 없고, 일반 풍속에 어긋남도 없다. 집에 있으면 성실한 척하고 세상에서는 청렴결백한 것 같아 모두 그를 따르며,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지만 요(堯)와 순(舜)과 같은 도(道)에 함께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덕을 해치는 사람'이라 한 것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나는 사이비한 것을 미워한다[孔子曰 惡似而非者].'라고 하셨다. "사이비는, 외모는 그럴듯하지만 본질은 전혀 다른, 즉 겉과 속이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하며, 선량해 보이지만 실은 질이 좋지 못하다." 공자가 사이비를 미워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말만 잘하는 것을 미워하는 이유는 신의를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고, 정(鄭)나라의 음란한 음악을 미워하는 이유는 아악(雅樂)을 더럽힐까 두려워서이고, 자줏빛을 미워하는 이유는 붉은빛을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다. 이처럼 공자는 인의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겉만 번지르르하고 처세술에 능한 사이비를 '덕을 해치는 사람'으로 보았기 때문에 미워한 것이다. 원리 원칙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일수록 사이비가 활개를 치는 법이다. 그들은 대부분 올바른 길을 걷지 않고 시류에 일시적으로 영합하며,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거나 말로 사람을 혼란시키는 사회의 암적인 존재들이다. 원말은 사시이비(似是而非) 또는 사이비자(似而非者)이다.
羊頭狗肉 양두구육
풀이 양의 머리를 걸어 놓고 개고기를 팖. ⇨ 겉보기만 그럴듯하게 보이고 속은 변변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
용례 뒤에서는 폭언하며 앞에서는 품격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은 羊頭狗肉인 셈이다.
유래 춘추 시대 제(齊)나라 영공(靈公)은 괴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궁인들 가운데 특히 예쁘게 생긴 여자들을 뽑아 남자 옷을 입혀 놓고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것이었다. '우리 임금은 남장한 미인을 좋아한다.' 이 소문이 널리 퍼지자, 백성들 가운데 얼굴이 반반한 여자들은 임금의 눈에 띌까 봐 모두 남장을 했다. 그래서 영공은 대궐 밖 백성으로서 여인이 남장하는 것은 절대 금한다고 포고령을 내렸다. 그러고 나서 어쩐 일인지 금령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영공은 재상인 안영(晏⇨) 을 불러 그 까닭을 물어 보았다. 안영이 대답했다. "전하께서는 지금 궐내의 여인들에게는 남장을 시키시면서 궐 밖 일반 백성인 여인들의 남장은 금하고 계십니다. 이와 같은 조치는 마치 '밖에 양 머리를 걸어 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파는 것'과 같은 속임수입니다. 궐 밖 여인들의 남장을 금하시려면 먼저 궐내 여인들의 남장부터 못하게 하십시오." 그 말을 들은 영공은 자기 실수를 깨닫고 대궐 안의 남장 미인들에게 평상시 차림으로 당장 바꿔 입으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얼마 안 가서 전국의 남장 미인들도 자진해서 모두 도로 여자 옷으로 갈아입었다.
羊質虎皮 양질호피
풀이 속은 양이고 거죽은 범임. ⇨ 본바탕은 아름답지 아니하면서 겉모양만 꾸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용례 겉모습은 화려해 보이지만 내실은 빈약한 羊質虎皮가 되어서는 안 된다.
유래 "법언(法言)"은 "논어(論語)"의 문체를 모방한 일종의 수상록으로, '오자(吾子)'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혹자가 묻기를 '어떤 사람이 공자의 문하에 들어가 그 안채에 올라 공자의 책상에 엎드리고 공자의 옷을 입는다면 그 사람은 공자라고 할 수 있 습니까⇨'라고 하니, 그 무늬는 그렇지만 그 바탕은 아니다'라고 대답하였다. 혹자가 다시 '바탕이란 무엇을 말하는지요.'라고 물으니, '양은 그 몸에 호랑이 가죽을 씌어 놓아도 풀을 보면 좋아서 뜯어 먹고, 승냥이를 만나면 두려워 떨며 자신이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 사실을 잊어버린다(羊質而虎皮, 見草而說, 見豺而戰, 忘其皮之虎矣).'라고 대답하였다." 이는 양이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써서 겉으로는 호랑이처럼 보일지라도 호랑이의 바탕(본질)까지 갖추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호랑이 가죽을 쓰고서도 예전처럼 풀을 뜯어 먹으며, 다른 짐승의 눈에는 자신이 호랑이로 보인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승냥이를 만나면 예전처럼 무서워하며 벌벌 떤다는 것이다. 여기서 유래하여 '羊質虎皮'는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그에 걸맞은 실력이나 실속은 갖추고 있지 못함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되는데, 우리나라 속담의 '빛 좋은 개살구'와 그 의미가 통한다. 또 양의 본질을 바꾸지 못한 채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다고 해서 호랑이가 될 수 없듯이, 본질이 바뀌지 않는 한 변화하지 않음을 비유하는 말로도 사용된다.
指鹿爲馬 지록위마
풀이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함. ⇨ ①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마음대로 함을 이르는 말 ② 모순된 것을 끝까지 우겨서 남을 속이려는 짓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용례 윗사람이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만들어 아랫사람들을 권위에 굴복하게 하다니, 指鹿爲馬가 따로 없구나.
유래 "사기(史記)"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 전한다. 조고(趙高)가 모반을 일으키려 하였다. 그러나 여러 신하들이 따라 주지 않을 것이 두려웠다. 이들을 시험하기 위해, 사슴을 2세 황제에게 바치면서 말하였다. "이것은 말입니다." 2세 황제가 웃으며, "승상이 잘못 본 것이오. 사슴을 일러 말이라 하오⇨" 하였다[趙高欲爲亂 恐群臣不聽 乃先設驗持鹿獻於二世曰馬也 二世笑曰 丞相誤邪 謂鹿爲馬]. 진나라 시황제가 죽자, 환관 조고는 거짓 조서를 꾸며 태자 부소(扶蘇)를 죽이고 어린 호해(胡亥)로 2세 황제를 삼았다. 호해는 "천하의 모든 쾌락을 마음껏 즐기며 살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어리석었기 때문이다. 조고는 이 호해를 이용하여 경쟁 관계에 있던 승상 이사(李斯)를 비롯한 많은 신하들을 죽이고 승상의 자리에 올라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그러자 역심이 생긴 조고가 자기를 반대하는 중신들을 가려 내기 위해 이와 같은 행동을 하였던 것이다. 호해가 말을 마치고 좌우의 신하들을 둘러보자, 잠자코 있는 사람보다 "그렇다."고 긍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아니다."고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조고는 부정하는 사람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죄를 씌워 죽였다. 그 후 궁중에는 조고의 말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후로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을 비유할 때 이 고사가 흔히 인용되었다. 이것이 요즘에 와서는 그 뜻이 확대되어 모순된 것을 끝까지 우겨 남을 속인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