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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t 1_1_내 친구를 소개합니다_단원 정리.p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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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solution > 한문

한문

성어마당

성어마당(자음별 찾기)

성어풀이
他山之石 타산지석
풀이 다른 산의 나쁜 돌이라도 자신의 산의 옥돌을 가는 데에 쓸 수 있음. ⇨ 본이 되지 않은 남의 말이나 행동도 자신의 지식과 인격을 수양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용례 이번 참사를 他山之石으로 삼아, 유사한 위기 상황에 대비하여야 할 것이다.
유래 "시경(詩經)" '소아편(小雅篇)'에 실린 '학명(鶴鳴)'의 '… 他山之石 可以攻玉: 다른 산의 못생긴 돌멩이라도 옥을 갈 수 있다네.'라는 구절에서 유래된 고사성어이다. 절차탁마(切磋琢磨)라는 말과 함께 인간의 인격 수양과 관련한 명구(名句)로, 흔히 '他山之石으로 삼다'라고 쓴다.
卓上空論 탁상공론
풀이 탁자(卓子) 위에서만 펼치는 헛된 논설 ⇨ 현실성이 없는 허황한 이론이나 논의
용례 세 시간에 걸친 긴 회의는 卓上空論으로 끝나고 말았다.
貪官汚吏 탐관오리
풀이 백성의 재물을 탐내어 빼앗는, 행실이 깨끗하지 못한 관리
용례 貪官汚吏의 횡포가 나날이 심해져만 갔다.
泰山北斗 태산북두
풀이 ① 태산(泰山)과 북두칠성을 아울러 이르는 말 ②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용례 학자들도 그를 泰山北斗라 하며 우러러보듯 존경했다.
유래 한유(韓愈)는 중국 당나라 때의 문학자이자 사상가로, 이백(李白), 두보(杜甫), 백거이(白居易)와 함께 당나라의 대표적 4대 시인의 한 사람이며,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로 꼽히는 중국 제일의 문장가이다. 그는 25세 때 진사과에 급제한 뒤 벼슬이 이부상서(吏部尙書)까지 되었으나 황제가 관여하는 불사(佛事)를 극간하다가 조주자사(潮州刺史)로 좌천되었다. 천성이 강직했던 한유는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좌천과 파직을 당하기도 했는데, 만년에 이부시랑(吏部侍郞)을 지낸 뒤 57세의 나이로 죽었다. 한유는 순탄하지 못했던 벼슬살이와는 달리 학문과 사상 분야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 친구인 유종원 등과 고문 운동을 제창하여, 고문이 송대 이후 중국 산문 문체의 표준이 되게 했으며, 그의 문장은 그 모범으로 알려지는 등 후세에 영향을 주었다. 사상 분야에서는 도교와 불교를 배격하고 유가의 사상을 존중하여 공자 이래의 유학을 왕성하게 하는 데에 힘써 송대 이후의 도학(道學)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 결과 후학들로부터 존경과 찬사를 받게 되었다. "당서(唐書)" '한유전(韓愈傳)'의 찬(贊)에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당나라가 일어난 이래 한유는 육경(六經)의 문장으로 여러 학자들의 스승이 되었다. 그가 죽은 뒤에도 그의 학설이 천하에 떨쳤으므로 학자들은 그를 '태산북두(泰山北斗)'처럼 우러러보았다." 여기서 '泰山'은 글자상으로는 큰 산이라는 뜻이지만 중국에서는 오악(五嶽)의 하나로서 성산(聖山)으로 우러러보는 산이다. '北斗'는 북두칠성을 가리키는데, 북두칠성이 모든 별의 중심적인 존재로 받들어지고 있는 데서 '北斗'라는 말 자체도 뛰어난 인물을 비유할 때 사용한다. 오늘날 이 말은 '태두(泰斗)', '산두(山斗)'라는 약칭으로 통용되며, 특히 학술적 업적이 뛰어난 학자를 가리키는 데 쓰인다.
泰然自若 태연자약
풀이 마음에 어떠한 충동을 받아도 움직임이 없이 천연스러움.
용례 그 어떤 위기에서도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泰然自若하던 그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太平聖代 태평성대
풀이 어진 임금이 잘 다스리어 태평한 세상이나 시대
용례 민생 안정을 최우선으로 두고 정책을 펼치며 문무를 겸비한 지도력으로 최고의 太平聖代를 이룩했다.
兎死狗烹 토사구팽
풀이 토끼가 죽으면 토끼를 잡던 사냥개도 필요 없게 되어 주인에게 삶아 먹히게 됨.⇨ 필요할 때는 쓰고 필요 없을 때는 야박하게 버리는 경우를 이르는 말
용례 그는 윗사람을 위해 충실한 '사냥개' 역할을 했지만 결국은 兎死狗烹을 당하였다.
유래 이 고사성어는 유방(劉邦)을 도와 한(漢)나라를 세운 한신(韓信)의 이야기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중국을 통일한 유방은 일등공신 한신을 초왕(楚王)으로 봉하였으나, 그의 세력이 언젠가는 자신에게 도전하지 않을까 염려하였다. 그러던 차에 유방과 패권을 다투었던 항우(項羽)의 부하 종리매(鐘離⇨)가 옛 친구인 한신에게 몸을 의탁하였다. 일찍이 전투에서 종리매에게 괴로움을 당하였던 유방은 종리매가 초나라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한신은 옛 친구를 배반할 수 없어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이 사실을 상소한 자가 있어 유방은 진평(陳平)과 상의한 뒤 그의 책략에 따라 초나라의 운몽(雲夢)에 순행한다는 구실로 제후들을 초나라 서쪽 경계인 진(陳)나라에 모이게 하였다. 한신은 자신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여 자진해서 배알하려고 하였는데, 부하들이 종리매의 목을 베어 가지고 가면 황제가 기뻐할 것이라는 계책을 진언하였다. 한신이 종리매에게 이 일을 전하자 종리매는 "유방이 초(楚)를 침범하지 못하는 것은 자네 밑에 내가 있기 때문이네. 그런데 자네가 나를 죽여 유방에게 바친다면 자네도 얼마 안 가서 당할 것일세. 자네의 생각이 그 정도라니 내가 정말 잘못 보았네. 자네는 남의 장(長)이 될 그릇은 아니군. 좋아, 내가 죽어 주지."하고는 스스로 목을 베어 자결하였다. 한신은 종리매의 목을 가지고 가서 유방에게 바쳤으나 유방은 한신을 포박하였으며, 모반의 진상을 조사한 뒤 혐의가 없자 초왕에서 회음후(淮陰侯)로 강등하였다. 이에 한신은 "과연 사람들의 말과 같도다. 교활한 토끼를 다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아먹고, 새 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도 감추어지며, 적국이 타파되면 모신도 망한다. 천하가 평정되고 나니 나도 마땅히 '팽' 당하는구나(果若人言. 狡兎死良狗烹, 飛鳥盡良弓藏. 敵國 破謀臣亡. 天下已定, 我固當烹)."라고 한탄하며 유방을 원망하였다고 한다. 이 고사는 "사기(史記)"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보인다. 여기서 유래하여 '兎死狗烹'은 토끼 사냥이 끝난 뒤 사냥개를 삶아 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필요할 때는 쓰다가 필요 없을 때는야박하게 버리는 경우를 빗대어 이르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推敲 퇴고
풀이 글을 지을 때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치고 다듬음.
용례 곧 식이 거행될 예정이어서 연설문을 推敲할 시간이 없다.
유래 당(唐)나라의 시인 가도(賈島)가 나귀를 타고 가다 시 한 수가 떠올랐다. 그것은 "鳥宿池邊樹僧推月下門: 새는 연못 가 나무에 자고 중은 달 아래 문을 민다."라는 것이었는데, 달 아래 문을 민다보다는 두드린다[敲]고 하는 것이 어떨까 하고 골똘히 생각하다 그만 경조윤(京兆尹: 首都의 市長) 한유(韓愈)의 행차 길을 침범하였다. 한유 앞으로 끌려간 그가 사실대로 이야기하자 한유는 노여운 기색도 없이 한참 생각하더니 "역시 '민다'는 퇴(推)보다는 '두드린다'는 고(敲)가 좋겠군." 하며 가도와 행차를 나란히 하였다는 고사(故事)에서 생겨난 말로 이때부터 '推敲'라는 말이 쓰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