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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solution > 한문

한문

성어마당

성어마당(자음별 찾기)

성어풀이
拍掌大笑 박장대소
풀이 손뼉을 치며 크게 웃음.
용례 그녀의 재치 있는 답변에 방청석에서 拍掌大笑가 터졌다.
博學多識 박학다식
풀이 학식이 넓고 아는 것이 많음.
용례 그는 어려서부터 독서를 많이 해서 그런지 博學多識하다.
半信半疑 반신반의
풀이 얼마쯤 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심함.
용례 어머니는 동생의 말을 半信半疑하시는 눈치였다.
斑衣之⇨ 반의지희
풀이 때때옷을 입고 하는 놀이 ⇨ 늙어서 효도함을 이르는 말
용례 斑衣之⇨라는 말처럼, 늙어서도 부모님께 효도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유래 당(唐)나라 중기 이한(李澣)이 지은 “몽구(蒙求)”의 ‘고사전(高士傳)’에 나오는 말이다. 춘추 전국 시대에 효심이 지극한 노래자(老萊子)가 있었다. 노래자가 70세의 백발노인이 되었어도 그의 부모는 그의 효성 덕분으로 건강하였다. 노래자는 행여나 부모 자신이 늙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 늘 알록달록한 때때옷을 입고 어린아이처럼 재롱을 피우기도 하였다. 이런 아들의 재롱을 보면서 어린아이처럼 지내니 부모는 자신의 나이를 알려고 하지 않고 잊고 지냈다. 또한 노래자도 자신의 나이를 부모님에게 알려 드리지도 않았다. 노래자는 하루의 세 끼니 부모님 진지를 늘 손수 갖다 드렸고, 부모님이 진지를 모두 마칠 때까지 마루에 엎드려 있었다. 때로는 물을 들고 마루로 올라가다가 일부러 자빠져 마룻바닥에 뒹굴면서 앙앙 우는 모습을 보여 드려 부모님이 아들의 아기 때의 모습을 연상케 하여 즐겁도록 하였다. 하루도 빠지지 않은 노래자의 극진한 효성에 대해 주위의 칭찬이 자자하였다. 이처럼 ‘斑衣之⇨’는 중국 초나라의 노래자가 일흔 살에 늙은 부모님을 위로하려고 색동저고리를 입고 어린이처럼 기어 다녀 보였다는 데서 유래한다.
反哺之孝 반포지효
풀이 어미에게 되먹이는 까마귀의 효성 ⇨ 까마귀 새끼가 자라서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효(孝)라는 뜻으로, 자식이 자란 후에 어버이의 은혜를 갚는 효성을 이르는 말
용례 부모를 反哺之孝로 모시는 것은 자식의 마땅한 도리이다.
유래 중국 진(晉)나라의 이밀이 지은 “진정표(陳情表)”에 실린 자신의 이야기이다. 무제(武帝)는 이밀에게 높은 관직을 내렸지만 그는 늙으신 할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관직을 사양하였다. 무제는 이밀이 관직을 사양한 것에 대해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심정이라고 크게 화를 내었다. 그러자 이밀은 자신을 까마귀에 비유하면서, "한낱 미물인 까마귀도 반포지효가 있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제가 늙으신 할머니를 끝까지 봉양할 수 있도록 넓은 마음으로 헤아려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까마귀는 새끼가 깨면 두 달 동안 먹이를 물어다가 먹이는데, 그 까마귀가 자라나면 같은 시간 동안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며 봉양하여, 자신을 길러준 은혜에 보답한다고 한다.
拔本塞源 발본색원
풀이 근본을 빼내고 원천을 막아 버림. ⇨ 좋지 않은 일의 근본 원인이 되는 요소를 완전히 없애 버려서 다시는 그러한 일이 생길 수 없도록 함.
용례 부정부패의 비리를 拔本塞源해야만 한다.
유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소공(昭公) 9년조’에 나오는 말이다. “좌씨전(左氏傳)”에 따르면 “나에게 큰아버지는 옷에 갓과 면류관이 있으며, 나무와 물에 근원이 있고, 백성에게 지혜로운 임금이 있는 것과 같다. 큰아버지께서 만약 갓을 부수고, 근본을 뽑아 근원을 틀어막아 오직 지혜로운 임금을 버리신다면 비록 오랑캐라 할지라도 어찌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겠는가[我在伯父 猶衣之有冠冕 木水之有本源 民人之有謀主 伯父若裂冠毁冕 拔本塞源 專棄謀主 雖戒狄其何有余一人].”라고 되어 있다.
傍若無人 방약무인
풀이 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여김. ⇨ 곁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아무 거리낌 없이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태도가 있음.
용례 그들은 주위 사람들은 전혀 의식하지 않고 傍若無人으로 떠들어 댔다.
背水之陣 배수지진
풀이 물을 등지고 진을 침. ⇨ 어떤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용례 이번 경기에서 지게 되면 탈락이 확정되기 때문에 두 팀 모두 背水陣을 치고 공격적인 경기를 펼쳤다.
유래 “사기(史記)”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나오는 말이다. 한(漢)나라 유방(劉邦)이 제위에 오르기 2년 전인 204년, 명장 한신(韓信)은 유방의 명령에 따라 장이(張耳)와 함께 위(魏)나라를 격파한 여세를 몰아 병사 수만 명을 이끌고 조(趙)나라를 공격하였다. 조나라는 군사 20만 명을 동원하여 한나라가 쳐들어올 길목에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조나라의 군사 전략가 이좌거(李左車)가 재상 진여(陳餘)에게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지나가는 한나라 군사를 공격하자고 건의하였으나 기습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진여에 의해 묵살되었다. 이 정보를 입수한 한신은 기병 2,000명을 조나라가 쌓은 성채 바로 뒤편에 매복시켰다. 그러면서 한신은 "우리가 달아나는 것을 보면 조나라 군사는 우리를 좇아올 것이다. 이때 조나라 누벽에 들어가 한나라의 붉은 깃발을 꽂아라." 또한 병사 1만 명으로 하여금 먼저 가게 하고 정경의 입구에서 나와 강을 등지고 진을 치게 하였다. 조나라 군사는 이를 바라보며 크게 웃었다[信乃使萬人先行 出背水陣 趙軍望見而大笑]. 조나라 군사가 성에서 나와 공격하자 한신은 거짓으로 배수진까지 후퇴하였다. 여러 차례 접전을 치르면서 한나라 군사는 배수진에서 우군과 합류하였다. 기세를 제압하였다고 판단한 조나라 군사는 한신을 맹렬히 추격하였다. 이때를 노려 한신은 매복시켜 둔 군사에게 조나라의 성채를 점령하도록 하였고, 나머지 군사는 배수진을 친 곳에서 필사적으로 싸웠다. 결사적인 항전에 지친 조나라 군사는 견디지 못하고 성채로 돌아와 보니 이미 한나라 깃발이 꽂혀 있었다. 한신의 승리로 돌아간 것이다. 이렇듯 ‘背水陣’은 오랜 원정을 거듭해 조나라보다도 전력이 떨어진 한신의 전술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것처럼 사생결단하는 정신 상태로 싸움에 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등 뒤에 강물이 흐르니 싸움에 져서 죽든지 강물에 빠져 죽든지 죽는 것은 마찬가지이므로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움에 임한 것이다.
背恩忘德 배은망덕
풀이 남에게 입은 은덕을 저버리고 배신하는 태도가 있음.
용례 그 같은 背恩忘德을 저지르고서 어찌 나에게 다시 찾아올 수 있느냐⇨
百家爭鳴 백가쟁명
풀이 많은 학자나 문화인 등이 자기의 학설이나 주장을 자유롭게 발표하여, 논쟁하고 토론하는 일
용례 교육청과 경찰에서는 학교 폭력을 심각한 범죄로 보고 강력한 처벌 등 百家爭鳴의 대책을 내놓고 있다.
白骨難忘 백골난망
풀이 죽어서 백골이 되어도 잊을 수 없음. ⇨ 남에게 큰 은덕을 입었을 때 고마움의 뜻으로 이르는 말
용례 목숨을 부지한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인데 이리도 보살펴 주시니 그 은혜가 白骨難忘이로소이다.
百年佳約 백년가약
풀이 백 년을 두고 하는 아름다운 언약 ⇨ 젊은 남녀가 부부가 되어 평생을 같이 지낼 것을 굳게 다짐하는 아름다운 언약
용례 그는 3살 연하인 여자와 다음 달에 百年佳約을 맺는다.
百年大計 백년대계
풀이 백 년을 두고 세우는 큰 계획 ⇨ 먼 앞날까지 미리 내다보고 세우는 크고 중요한 계획
용례 정치적, 국민적 합의를 통해 국가의 百年大計를 세웠다.
百年之客 백년지객
풀이 한평생을 두고 늘 어려운 손님으로 맞이함. ⇨ ‘사위’를 이르는 말
용례 장모님은 나를 百年之客이라 부르며 버선발로 달려 나와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百年河淸 백년하청
풀이 백 년을 기다린다 해도 황하(黃河)의 흐린 물은 맑아지지 않음. ⇨ 중국의 황허 강(黃河江)이 늘 흐려 맑을 때가 없다는 뜻으로, 아무리 오랜 시일이 지나도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 어려움을 이르는 말
용례 그 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마도 百年河淸일 것이다.
유래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양공8년조(襄公八年條)’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춘추 전국 시대 소국인 정(鄭)나라는 진(晉)나라와 초(楚)나라 등과 같은 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나름대로의 생존 전략을 펼쳐 독립을 유지하는 데 급급하였다. 그런데 정나라가 초나라의 속국인 채(蔡)나라를 침공하여 공자 섭(燮)을 포로로 잡아가 화를 자초하였다. 초나라는 이를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여 자낭(子囊)에게 정나라에 보복하라고 명령하였다. 국가 존망의 위기에 몰린 정나라는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중신 회의를 거듭 열었으나 말만 무성하고 결론이 나지 않았다. 항복하여 백성을 위험에서 구하자는 항복론자와 진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자는 주전론자로 나뉘어 양측의 의견이 팽팽히 대립하였다. 이때 자사(子駟)가 “주(周)나라의 시에 황허 강의 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사람의 짧은 목숨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한 형편입니다. 여러 가지를 놓고 점을 친다면 그물에 얽힌 듯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周詩有之曰 待河之淸 人壽幾何 非云詢多 職競作羅].”라고 하였다. 이 말은 믿을 수 없는 진나라의 구원병을 기다린다는 것은 황허 강의 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린다는 이야기와 같은 뜻이다. 결국 자사의 주장이 수용되어 초나라에 항복하여 화친을 맺고 위기를 현실적으로 모면하였다. 이렇듯 ‘百年河淸’은 보통 불가능한 일의 상징으로 비유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므로 상황을 지혜롭게 간파하여 실용적인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현명하고 효과적인 방법임을 의미하는 고사성어이다.
百年偕老 백년해로
풀이 백 년을 함께 늙음. ⇨ 부부가 되어 한평생을 사이좋게 지내고 즐겁게 함께 늙음.
용례 나는 그와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百年偕老하기로 약속했다.
白面書生 백면서생
풀이 글만 읽어 얼굴이 창백한 사람 ⇨ 한갓 글만 읽고 세상일에는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
용례 나는 글만 읽은 白面書生인데, 별안간 돈을 어떻게 벌어온다는 말이오.
유래 “송서(宋書)”의 ‘심경지전(沈慶之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남북조 시대에 남조(南朝)의 송(宋)나라와 북조의 북위(北魏)는 강남(江南)의 사진(四鎭)을 둘러싸고 때로는 대립하고, 때로는 화의하는 외교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북위의 태무제(太武帝)는 북쪽을 무력으로 통일한 다음 유연(柔然)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서역(西域) 여러 나라와 우호적인 외교 관계를 맺었다. 그러자 송나라 제3대 문제(文帝)는 남쪽의 임읍(林邑)을 평정하여 북위와의 일대 결전에 대비하였다. 449년에 북위의 태무제가 유연을 선제 공격하자 송나라의 문제는 이때가 숙적 북위를 공격할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하여 문신들과 북위를 공격할 구체적인 방법을 논의하였다. 이때 무관인 심경지는 이전에 결행한 북벌 출병의 전례를 들어 출병을 반대하고 다음과 같이 올바른 말을 하였다. “폐하, 밭갈이는 종에게 물어보고, 베를 짜는 일은 하녀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지금 폐하는 적국을 공격하려고 하면서 백면서생과 도모하면 어찌 적을 이길 수 있겠사옵니까[田事可問奴 織事可問婢 今陛下 將欲攻敵國 與白面書生謀之 事何由濟].” 그러나 문제는 심경지의 말을 듣지 않고 문인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출병을 강행하였다가 대패하였다. 심경지의 말에서 유래한 ‘白面書生’이란, 얼굴이 검은 무관과 대비하여 집 안에서 책만 읽어 창백한 얼굴의 문신들을 가리키며, 말로만 떠들고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 또는 초년생을 비꼬아서 하는 말이다. 출전 경험이 많은 심경지는 비록 글에는 능숙하지 못하지만 어릴 때부터 무예를 연마하여 그 기량이 뛰어났다. 10세 때 동진(東晉)의 장군 손은(孫恩)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사병(私兵)들을 이끌고 반란군을 진압할 정도였다. 40세 때는 이민족의 반란을 진압한 공로로 장군에 임명되었으며, 이후에도 혁혁한 전공을 세워 건무장군(建武將軍)에 임명되어 변경 수비군의 총수로 부임하기도 하였다.
白眉 백미
풀이 흰 눈썹 ⇨ 여럿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나 훌륭한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용례 이번 연주회의 白眉는 단연 피아노 독주였다.
유래 “삼국지(三國志)”의 ‘촉지 마량전(蜀志馬良傳)’에 그 유래가 전한다. 제갈량, 즉 제갈공명(諸葛孔明)과도 친교를 맺었던 마량(馬良)은 형제가 다섯이었다. 다섯 형제는 모두 자(字)에 상(常)이란 글자가 붙어 있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그들 형제를 가리켜 ‘마씨오상(馬氏五常)’이라 일컬었다. 형제가 모두 재주가 뛰어났으나 그중에서도 마량이 가장 뛰어났으므로 그 고장 사람들은 말하기를 “마씨오상은 모두 뛰어나지만 그중에서도 흰 눈썹이 가장 훌륭하다(馬氏五常 白眉最良).”라고 하였다. 즉, 마량은 어려서부터 눈썹에 흰 털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불렸던 것이다. 이때부터 같은 또래, 같은 계통의 많은 사람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을 白眉라 부르게 되었고, 지금은 사람만이 아니라 뛰어난 작품을 이야기할 때도 白眉라 부른다.
百發百中 백발백중
풀이 백 번 쏘아 백 번 맞힘. ⇨ ① 총이나 활 따위를 쏠 때마다 겨눈 곳에 다 맞음을 이르는 말 ② 무슨 일이나 틀림없이 잘 들어맞음.
용례 그 점쟁이는 百發百中으로 알아맞혔다.
유래 춘추 시대 초(楚)나라에 양유기(養由基)라는 호걸이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활을 잘 쏘았다. 어느 날, 볼일이 있어 집을 나섰다가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있는 광경을 보았다. 둘러선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가 보았더니, 젊은이들이 활솜씨를 겨루고 있었다. 오십 보 떨어진 곳에 과녁을 설치해 놓고 한 사람이 화살 석 대씩 쏘아 맞히는 내기였다. 화살이 과녁 가운데 정확히 맞을 때마다 구경꾼들이 박수갈채를 보내는 것을 보고, 양유기는 슬며시 호승심이 발동했다. 그는 앞으로 나가서 말했다. “오십 보 앞에서 화살을 날려 과녁을 맞히는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그러시오. 적어도 그 곱절은 먼 거리에서 쏘아 맞혀야 활솜씨가 제법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러자, 방금 활을 쏜 젊은이 중에 가장 박수를 많이 받은 사람이 아니꼽다는 듯이 시비를 걸었다. “형씨는 백 보 앞에서 쏘아 맞출 수 있다는 거요⇨” “그렇소.” “그럼 어디 나하고 겨루어 봅시다.” 이렇게 되어 양유기와 젊은이의 한판 경기가 벌어지게 되었다. 먼저 양유기가 백 보 앞에 있는 버드나무 잎사귀 하나에 표시를 했다. “이걸 맞히는 사람이 진정한 명사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오.” 젊은이는 질리고 말았다. 작은 버들잎 하나를 백 보 앞에서 어떻게 맞춘단 말인가. 그렇지만 자기가 자청해서 시합하자고 했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앞이므로 이제 와서 물러설 수도 없었다. 먼저 젊은이가 활시위에 화살을 재여 쏘았다. 그러나 날아간 화살은 표적인 버들잎을 건드리지도 못한 채 빗나가고 말았다. 다음은 양유기의 차례였다. 그는 별로 겨냥하는 것 같지도 않게 겨누고 화살을 날렸는데, 신통하게도 표적을 맞혀 떨어뜨렸다. “와, 놀랍구나, 놀라워!” “그야말로 신궁(神弓)이다!” 구경꾼들이 환성을 지르며 칭찬하자, 자존심이 상한 젊은이가 투덜거렸다. “어쩌다 요행수로 맞은 것이겠지.” 그 말을 듣고 양유기는 웃으며 제의했다. “노형께서 내 솜씨가 요행이라고 한다면 그 사실을 증명해 보겠소. 표적 버들잎을 열 개로 늘리도록 하지요.” “뭐요⇨ 열 개나⇨” “그렇소. 생각 있으면 노형이 먼저 쏘구려.” 그러나 이미 실력이 드러나 버린 젊은이는 뒤로 물러섰다. 양유기는 천천히 앞으로 나서더니 연속으로 화살 열 개를 날렸고, 그 화살은 어김없이 표적에 하나하나 들어맞았다. 아까보다 더한 탄성과 박수가 터졌음은 물 론이다. 그제야 젊은이는 진정으로 승복하며 감탄해 마지않았다. “실로 귀신같은 솜씨군요. 나는 오늘부터 활은 집어던지고 글이나 읽어야겠소.” 양유기는 젊은이한테 읍하여 답례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로부터 그의 명성은 온 나라에 퍼졌다.
白壽 백수
풀이 아흔아홉 살을 일컫는 말
용례 건강하게 白壽까지 살고 싶다고 할아버지는 늘 말씀하신다.
유래 ‘百’에서 ‘一’을 빼면 99가 되고 ‘白’ 자가 되는 데서 유래한다.
伯牙絶絃 백아절현
풀이 백아(伯牙)가 거문고 줄을 끊음. ⇨ 자기를 알아주는 참다운 벗의 죽음을 슬퍼함.
용례 그동안 두 사람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을 때 伯牙絶絃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수이다.
유래 “열자(列子)”의 ‘탕문편(湯問篇)’ 및 ”여씨춘추(呂氏春秋)“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중국 춘추 전국 시대 원래 초(楚)나라 사람이지만 진(晉)나라에서 고관을 지낸 거문고의 달인 백아가 있었다. 백아에게는 자신의 음악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절친한 친구 종자기(鍾子期)가 있었다. 백아가 거문고로 높은 산들을 표현하면 종자기는 “하늘 높이 우뚝 솟는 느낌은 마치 태산처럼 웅장하구나.”라고 하고, 큰 강을 나타내면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의 흐름이 마치 황허 강 같구나.”라고 맞장구를 쳐주기도 하였다. 또 두 사람이 놀러 갔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져 이를 피하기 위해 동굴로 들어갔다. 백아는 동굴에서 빗소리에 맞추어 거문고를 당겼다. 처음에는 비가 내리는 곡조인 임우지곡(霖雨之曲)을, 다음에는 산이 무너지는 곡조인 붕산지곡(崩山之曲)을 연주하였다. 종자기는 그때마다 그 곡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조금도 틀리지 않게 정확하게 알아 맞혔다. 이렇듯 종자기는 백아가 무엇을 표현하려는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고, 백아와는 거문고를 매개로 서로 마음이 통하는, 음악 세계가 일치하는 사이였다. 그런데 종자기가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등지자 너무나도 슬픈 나머지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거문고 줄을 스스로 끊어 버리고[伯牙絶絃] 죽을 때까지 다시는 거문고를 켜지 않았다고 한다. 백아는 자신의 음악을 알아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거문고 줄을 끊은 것이다. 이해관계에 따라 친구를 사귀거나 친구를 배신하는 현대 사회의 이기적인 모습에서 진실한 우정을 생각하게 하는 고사성어이다. 또한 깊은 속마음까지 서로를 알아주고 위하는 완벽한 우정을 비유할 때 인용된다.
白眼視 백안시
풀이 눈알의 흰자가 드러나게 흘겨봄. ⇨ 남을 업신여기거나 무시하는 태도로 흘겨봄.
용례 그녀의 한마디에 지금껏 그 남자를 白眼視하던 사람들도 웃음을 보였다.
유래 “진서(晉書)”의 ‘완적전(阮籍傳)’에 나오는 말이다. 위진 시대(魏晉時代: 3세기 후반)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노장(老莊)의 철학에 심취하여 대나무 숲에 은거하던 죽림칠현(竹 林七賢)의 한 사람에 완적(阮籍)이 있었다. 그는 예의범절에 얽매인 지식인을 보면 속물이라 하여 ‘백안시(白眼視)’했다고 한다. 어느 날 역시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혜강(⇨康)의 형 혜희(⇨喜)가 찾아왔다. 완적이 냉대하여 흘겨보자 혜희는 불쾌하여 물러가고 말았다. 혜강이 이 이야기를 듣고 완적이 좋아하는 술과 거문고를 가지고 찾아가자 완적은 크게 기뻐하여 청안(靑眼)으로 맞이했다. 이처럼 상대가 친지의 형일지라도 완적은 그가 속세의 지식인인 이상 청안시(靑眼視)하지 않고 ‘백안시(白眼視)’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조야(朝野)의 지식인들은 완적을 마치 원수 대하듯 몹시 미워했다고 한다.
白衣從軍 백의종군
풀이 흰옷을 입고 군대를 따름. ⇨ 벼슬 없이 군대를 따라 싸움터로 감.
용례 이순신은 벼슬 없이 白衣從軍하여 13척의 전함을 이끌고 일본의 대함대를 궤멸시켰다.
百戰老將 백전노장
풀이 수많은 싸움을 치른 노련한 장수 ⇨ 온갖 어려운 일을 많이 겪은 노련한 사람
용례 그는 이번 경기에서 百戰老將의 관록을 보여 주었다.
百戰百勝 백전백승
풀이 백 번 싸워 백 번 모두 이김. ⇨ 싸울 때마다 다 이김.
용례 나를 알고 적을 알면 百戰百勝한다.
百折不屈 백절불굴
풀이 백 번 꺾일지언정 휘어지지 않음. ⇨ 어떠한 난관에도 결코 굽히지 않음.
용례 그녀는 百折不屈의 강인한 정신력으로 이번 경기에서 우승을 하였다.
伯仲叔季 백중숙계
풀이 백(伯)은 맏이, 중(仲)은 둘째, 숙(叔)은 셋째, 계(季)는 막내라는 뜻으로, 사형제의 차례를 이르는 말
용례 옛날에는 4형제가 있을 경우, 伯仲叔季로 구분했다.
伯仲之勢 백중지세
풀이 형제인 장남과 차남의 차이 ⇨ 서로 우열을 가리기 힘든 형세
용례 두 사람의 실력은 실로 伯仲之勢였다.
유래 위(魏)나라 초대 황제 조비(曹丕)가 집필한 “전론(典論)”에 나오는 말이다. 조비는 “전론”에서 한(漢)나라의 대문장가인 부의와 반고 두 사람의 문장 실력에 대해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뜻으로 “문인들이 서로를 경시하는 것은 예부터 그러하였다. 부의와 반고의 실력은 백중지간이었다[文人相輕 自古而然 傅儀之於班固 伯仲之間耳].”라고 평하였다. 이 말에서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뜻의 伯仲之間이 유래하였다.
百尺竿頭 백척간두
풀이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올라섰음. ⇨ 몹시 어렵고 위태로운 지경을 이르는 말
용례 국가의 운명이 百尺竿頭에 선 절박한 시기이다.
百害無益 백해무익
풀이 해롭기만 하고 하나도 이로운 바가 없음.
용례 담배는 건강에 百害無益하므로, 흡연은 삼가야 한다.
報怨以德 보원이덕
풀이 원한을 덕으로 갚음.
용례 그분은 報怨以德의 자세로 평생을 살아왔다.
유래 “노자(老子)”의 ‘제63장 은시(恩始)’에 나오는 말이다. “무위를 위해 무위를 일삼으며, 맛이 없더라도 맛있는 것처럼 먹는다. 큰 것은 작은 것에서 비롯되고, 많은 것은 적은 것에서 비롯되며, 원수를 덕으로 갚는다[爲無爲 事無事 味無味 大小多少 報怨以德].” 이 글에서 ‘報怨以德’은 남들이 자신을 원망하더라도 덕으로 대하라는 또는 자신에게 원한을 품더라도 복수하지 말라는 뜻이다.
富貴在天 부귀재천
풀이 부귀를 누리는 일은 하늘의 뜻에 달려 있어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
용례 富貴在天이라고 했거늘,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야 한다.
夫婦有別 부부유별
풀이 남편과 아내는 분별이 있어야 함. ⇨ 오륜(五倫)의 하나로, 부부(夫婦) 사이에는 인륜상 각각 직분이 있어 서로 침범하지 못할 구별이 있음을 이름.
용례 조선 시대에는 夫婦有別이라 해서 남편과 아내로서의 본분과 역할이 달랐다.
父子有親 부자유친
풀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도리는 친애에 있음. ⇨ 오륜(五倫)의 하나로, 부모는 자식에게 인자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존경과 섬김을 다하라는 뜻임.
용례 父子有親은 가정생활을 건강하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오륜의 실천 덕목이다.
父傳子傳 부전자전
풀이 아버지가 아들에게 대대로 전함.
용례 父傳子傳이라더니, 아들도 그의 아버지를 닮아 축구에 소질이 있다.
不知其數 부지기수
풀이 그 수를 알지 못함. ⇨ 헤아릴 수가 없을 만큼 많음. 또는 그렇게 많은 수효
용례 전시회의 방문객들이 不知其數로 늘고 있는 추세이다.
不知所云 부지소운
풀이 뭐라고 말하여야 좋을지 모름.
용례 그의 질문에 그녀는 당황하면서 不知所云하였다.
夫唱婦隨 부창부수
풀이 남편이 주장하고 아내가 이에 잘 따름. ⇨ 가정에서의 부부 화합의 도리를 이르는 말임.
용례 夫唱婦隨라고, 기부를 통한 부부의 아름다운 동행이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北風寒雪 북풍한설
풀이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차가운 눈
용례 北風寒雪이 몰아치는 길 한가운데에 한 청년이 우두커니 서 있다.
粉骨碎身 분골쇄신
풀이 뼈를 가루로 만들고 몸을 부숨. ⇨ ① 정성으로 노력함을 이르는 말 ② 참혹하게 죽음.
용례 그는 민족의 독립을 위해 粉骨碎身하여 싸웠다.
不可思議 불가사의
풀이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 없이 이상하고 야릇함.
용례 인간의 생명력은 참으로 不可思議하다.
不眠不休 불면불휴
풀이 자지도 않고 쉬지도 않음. ⇨ 조금도 쉬지 않고 힘써 일함을 이르는 말
용례 비록 결과가 좋지는 않지만 나로서는 不眠不休의 정성을 다한 것이어서 후회는 없다.
不問可知 불문가지
풀이 묻지 아니하여도 알 수 있음.
용례 노후 생활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준비가 필요하다는 건 不問可知이다.
不問曲直 불문곡직
풀이 굽음과 곧음을 묻지 않음. ⇨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아니함.
용례 사실 여부를 不問曲直하고 화부터 내면 어쩌십니까⇨
不夜城 불야성
풀이 밤이 오지 않는 성 ⇨ 등불 따위가 휘황하게 켜 있어 밤에도 대낮같이 밝은 곳을 이르는 말
용례 국회의원 선거의 개표 결과가 실시간 발표되면서 TV를 지켜보는 아파트마다 不夜城을 이루었다.
유래 “한서지리지(漢書地理志)”에 나오는 말로, 밤에도 해가 떠 있어 밝았다고 하는 중국 동래군(東萊郡) 불야현(不夜縣)에 있었다는 성(城)에서 유래한다.
不要不急 불요불급
풀이 필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음.
용례 不要不急의 사치품 수입은 금해야 한다.
不撤晝夜 불철주야
풀이 밤낮을 가리지 않음. ⇨ 어떤 일에 몰두하여 조금도 쉴 사이 없이 밤낮을 가리지 아니함.
용례 그녀는 不撤晝夜 연구에 몰두하며 의약품 개발에 성공했다.
不恥下問 불치하문
풀이 손아랫사람이나 지위나 학식이 자기만 못한 사람에게 모르는 것을 묻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함.
용례 그는 자존심이 아주 강한 사람이었지만 모르는 것이 있을 때에는 不恥下問할 줄 알고 아랫사람의 충고도 겸허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유래 “논어(論語)”의 ‘공야장(公冶長)’편에 나오는 말이다. 자공(子貢)이 위(衛)나라의 대부인 공문자(孔文子)의 시호(諡號)가 어떻게 해서 '문(文)'이 되었는지를 묻자 공자(孔子) 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민첩해서 배우기를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로써 시호를 문이라 한 것이다(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謂文也)." 이렇듯 학문을 좋아하여, 혹시 모르는 것이 있으면 비록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일지라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진실로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도 기꺼이 물어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不惑 불혹
풀이 미혹되지 아니함. ⇨ 마흔 살을 달리 이르는 말로,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함.
용례 그녀는 不惑의 나이에도 이십 대 못지않은 왕성한 미모를 과시하고 있다.
유래 “논어(論語)”의 ‘위정편(爲政篇)’에서 공자는 일생을 회고하며 자신의 학문 수양의 발전 과정에 대해 ‘나는 15세가 되어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30세에 학문의 기초를 확립했다(三十而立). 40세가 되어서는 미혹하지 않았고(四十而不惑), 50세에는 하늘의 명을 알았다(五十而知天命). 60세에는 남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였고(六十而耳順), 70세에 이르러서는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라는 말을 남겼다.
朋友有信 붕우유신
풀이 오륜(五倫)의 하나로, 벗과 벗 사이의 도리는 믿음에 있음을 이름.
용례 진정한 사귐은 오륜(五倫)의 덕목인 朋友有信처럼 믿음이 밑바탕을 이루어야 한다.
朋友責善 붕우책선
풀이 벗끼리 서로 좋은 일을 하도록 권함.
용례 朋友責善이라는 말처럼, 참다운 친구라면 서로 나쁜 짓을 못하도록 권하고 좋은 길로 이끌어야 한다.
非夢似夢 비몽사몽
풀이 완전히 잠이 들지도 잠에서 깨어나지도 않은 어렴풋한 상태
용례 그는 아침이 올 때까지 非夢似夢 중에 오한에 떨며 누워 있었다.
非一非再 비일비재
풀이 같은 현상이나 일이 한두 번이나 한둘이 아님. ⇨ 같은 현상이나 일이 많음.
용례 일이 밀리다 보니 야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非一非再하였다.
貧者一燈 빈자일등
풀이 가난한 사람이 바치는 하나의 등(燈) ⇨ 물질의 많고 적음보다 정성이 중요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용례 가난한 할머니의 기부금은 ‘貧者一燈’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유래 불경(佛經)인 “현우경(賢愚經)”의 ‘빈녀난타품(貧女難陀品)’에서 비롯된 말이다. 석가(釋迦)께서 사위국(舍衛國)의 어느 정사(精舍)에 머물고 있을 때 그곳 국왕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각각 신분에 걸맞은 공양을 하였다. 그 모습을 본 어느 가난한 여인이 “모처럼 스님을 뵙게 되었는데도 아무런 공양도 할 수 없다니 정말 슬픈 일이다."라고 한탄하였다. 그리고는 온종일 구걸하여 얻은 돈 한 푼을 가지고 기름집으로 갔다. 한 푼어치 기름으로는 아무런 소용도 되지 않았으나 그 여인의 말을 들은 기름집 주인은 갸륵하게 생각하여 한 푼의 몇 배나 되는 기름을 주었다. 난타(難陀)라고 하는 이 여인은 그 기름으로 등을 하나 만들어 석가에게 바쳤다. 그런데 그 수많은 등불 속에서 이상하게도 난타가 바친 등불만이 새벽까지 남아서 밝게 타고 있었다. 손으로 바람을 보내거나 옷자락으로 흔들어도 불은 꺼지지 않았다. 나중에 석가는 난타의 그 정성을 알고 그녀를 비구니로 받아들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