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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성어마당

성어마당(주제별)

학문

성어풀이
敎學相長 교학상장
풀이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 성장함. ⇨ 남을 가르치는 일과 스승에게서 배우는 일이 함께 실행되는 가운데 자신의 학업이 향상됨.
용례 그들은 스승과 제자로 인연을 맺은 지 2년 만에 가르침과 배움을 통한 진정한 敎學相長을 이루었다.
讀書三到 독서삼도
풀이 독서를 하는 세 가지 방법 ⇨ 입으로 다른 말을 아니하고 책을 읽는 구도(口到), 눈으로 다른 것을 보지 않고 책만 잘 보는 안도(眼到), 마음속에 깊이 새기는 심도(心到) 를 이름.
용례 송나라 사상가 주희는 "讀書三到 중 심도(心到)가 가장 중요하다."며 체계적인 독서와 이치를 파고드는 공부, 실천을 위한 학문을 추구했다.
同門受學 동문수학
풀이 한 스승 밑에서 함께 학문을 배우거나 수업을 받음.
용례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同門受學한 친구 사이이다.
燈火可親 등화가친
풀이 등불을 가까이할 만함. ⇨ 서늘한 가을밤은 등불을 가까이하여 글 읽기에 좋음을 이르는 말
용례 가을은 燈火可親의 계절이니,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孟母斷機 맹모단기
풀이 맹자의 어머니가 베틀의 실을 끊음. ⇨ 학문을 중도에서 그만두면 아무 쓸모가 없음을 이르는 말
용례 孟母斷機는 맹자가 학업을 중단하고 돌아왔을 때에, 그 어머니가 짜던 베를 잘라서 학문을 중도에 그만둔 것을 훈계한 일을 이르는 말이다.
유래 전한(前漢) 말 유향(劉向)이 지은 “열녀전(烈女傳)”에 나오는 말이다. 전국 시대(戰國時代) 노(魯)나라의 철학자 맹자(孟子)는 성선설(性善說)을 바탕으로 인의(仁義)를 중시하는 왕도 정치(王道政治)를 주창한 당대 최고의 유학자였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그 어머니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일화에서 보듯 아들 교육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훌륭한 분이었다. 이 고사도 맹자 어머니의 아들 교육에 관한 일화이다. 맹자는 학문에 전념할 만한 나이가 되자 고향을 떠나 공부를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기별도 없이 맹자가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 베틀에 앉아 길쌈을 하고 있던 맹자의 어머니는 갑자기 찾아온 아들을 보고 기쁘기는 하였지만, 감정을 억누르고 아들에게 물었다. "네 공부가 어느 정도 되었느냐⇨” “아직 마치지는 못하였습니다." 하고 맹자가 대답하자, 맹자 어머니는 짜고 있던 베틀의 날실을 끊어 버리고는 이렇게 아들을 꾸짖었다. "네가 공부를 중도에 그만두고 돌아온 것은 지금 내가 짜고 있던 베의 날실을 끊어 버린 것과 같은 것이다. 무엇을 이룰 수 있겠느냐⇨" 맹자는 어머니의 이 말에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다시 스승에게로 돌아가 더욱 열심히 공부하였다. 그리하여 훗날 공자에 버금가는 유학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아성(亞聖)으로도 추앙받게 되었다.
孟母三遷之敎 맹모삼천지교
풀이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의 교육을 위해 세 번 집을 옮긴 일 ⇨ 맹자가 어렸을 때 묘지 가까이 살았더니 장사 지내는 흉내를 내기에, 맹자 어머니가 집을 시전 근처로 옮겼더니 이번에는 물건 파는 흉내를 내므로, 다시 글방이 있는 곳으로 옮겨 공부를 시켰다는 것으로,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세 번이나 이사를 하였음을 이르는 말
용례 ‘孟母三遷之敎’ 이야기는 자녀 교육에 있어서 환경이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말해 준다.
유래 맹자(孟子)는 이름이 가(軻)로, 공자가 태어난 곡부(曲阜)에서 멀지 않은 산둥성 추현(鄒縣) 출신이다. 어려서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므로 어머니 손에서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의 어머니는 현명한 사람으로 아들 교육에 남달리 관심이 많아 단기지교(斷機之敎)의 일화를 남긴 분이다. 맹자가 어머니와 처음 살았던 곳은 공동묘지 근처였다. 놀 만한 벗이 없던 맹자는 늘 보던 것을 따라 곡(哭)을 하는 등 장사 지내는 놀이를 하며 놀았다. 이 광경을 목격한 맹자의 어머니는 안 되겠다 싶어서 이사를 했는데, 하필 시장 근처였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맹자가,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장사꾼들의 흉내를 내면서 노는 것이었다. 맹자의 어머니는 이곳도 아이와 함께 살 곳이 아니구나 하여 이번에는 글방 근처로 이사를 하였다. 그랬더니 맹자가 제사 때 쓰는 기구를 늘어놓고 절하는 법이며 나아가고 물러나는 법 등 예법에 관한 놀이를 하는 것이었다. 맹자 어머니는 이곳이야말로 아들과 함께 살 만한 곳이구나 하고 마침내 그곳에 머물러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어머니의 노력으로 맹자는 유가(儒家)의 뛰어난 학자가 되어 아성(亞聖)이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맹자 어머니는 고금에 현모양처(賢母良妻)의 으뜸으로 꼽히게 되었다.
文房四友 문방사우
풀이 서재(書齋)에 꼭 있어야 할 네 벗 ⇨ 곧 종이, 붓, 먹, 벼루의 네 가지 문방구를 말함.
용례 그 선비는 부채를 펼치며 유유히 걸어 들어오더니, 준비된 文房四友로 멋진 붓글씨를 써 내려갔다.
博學多識 박학다식
풀이 학식이 넓고 아는 것이 많음.
용례 그는 어려서부터 독서를 많이 해서 그런지 博學多識하다.
百家爭鳴 백가쟁명
풀이 많은 학자나 문화인 등이 자기의 학설이나 주장을 자유롭게 발표하여, 논쟁하고 토론하는 일
용례 교육청과 경찰에서는 학교 폭력을 심각한 범죄로 보고 강력한 처벌 등 百家爭鳴의 대책을 내놓고 있다.
不恥下問 불치하문
풀이 손아랫사람이나 지위나 학식이 자기만 못한 사람에게 모르는 것을 묻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함.
용례 그는 자존심이 아주 강한 사람이었지만 모르는 것이 있을 때에는 不恥下問할 줄 알고 아랫사람의 충고도 겸허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유래 “논어(論語)”의 ‘공야장(公冶長)’편에 나오는 말이다. 자공(子貢)이 위(衛)나라의 대부인 공문자(孔文子)의 시호(諡號)가 어떻게 해서 '문(文)'이 되었는지를 묻자 공자(孔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민첩해서 배우기를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로써 시호를 문이라 한 것이다(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謂文也)." 이렇듯 학문을 좋아하여, 혹시 모르는 것이 있으면 비록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일지라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진실로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도 기꺼이 물어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手不釋卷 수불석권
풀이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음. ⇨ 늘 책을 가까이하여 학문(學問)을 열심히 함.
용례 지긋하신 그 연세에도 여전히 세상과 학문에 관심을 가지고 늘 手不釋卷하시는 모습이 곁에 있는 사람을 겸허하게 만든다.
유래 “삼국지(三國志)”의 '여몽전(呂蒙傳)'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에서 후한(後漢)이 멸망한 뒤 위(魏)·오(吳)·촉한(蜀漢) 세 나라가 정립한 삼국 시대에 오나라의 초대 황제인 손권(孫權)의 장수 여몽(呂蒙)은 전쟁에서 세운 공로로 장군이 되었다. 손권은 학식이 부족한 여몽에게 공부를 하라고 권하였다. 독서할 겨를이 없다는 여몽에게 손권은 자신이 젊었을 때 글을 읽었던 경험과 역사와 병법에 관한 책을 계속 읽고 있다고 하면서 "후한의 황제 광무제(光武帝)는 변방일로 바쁜 가운데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으며[手不釋卷], 위나라의 조조(曹操)는 늙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였다"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래서 여몽은 싸움터에서도 학문에 정진하였다. 그 뒤 손권의 부하 노숙(魯肅)이 옛친구인 여몽을 찾아가 대화를 나누다가 박식해진 여몽을 보고 놀랐다. 노숙이 여몽에게 언제 그만큼 많은 공부를 했는지 묻자, 여몽은 "선비가 만나서 헤어졌다가 사흘이 지난 뒤 다시 만날 때는 눈을 비비고 다시 볼 정도로 달라져야만 한다[刮目相對]"라고 말하였다. “삼국지”에 나오는 여몽의 고사로, 손권이 여몽에게 부지런히 공부하라고 권유하면서 말한 '手不釋卷'은 손에서 책을 놓을 틈 없이 열심히 글을 읽어 학문을 닦는 것을 의미한다.
實事求是 실사구시
풀이 사실에 토대를 두어 진리를 탐구하는 일. 공리공론을 떠나서 정확한 고증을 바탕으로 하는 과학적ㆍ객관적 학문 태도를 이른 것으로, 중국 청나라 고증학의 학문 태도에서 볼 수 있음.
용례 實事求是는 조선 시대 실학파의 학문에 큰 영향을 주었다.
五車書 오거서
풀이 다섯 수레에 실을 만한 책 ⇨ 많은 장서(藏書)를 이르는 말
용례 그는 五車書를 섭렵하여 다방면에 걸친 독서를 하며 지적 능력을 키워 나갔다.
溫故知新 온고지신
풀이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앎.
용례 고전의 생명은 溫故知新에 있다.
유래 “논어(論語)”의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공자의 말 중에 “옛것을 알고 새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可以爲師矣).”라는 구절이 있다. 역사를 배우고 옛것을 배움에 있어, 옛 것이나 새것 어느 한 쪽에만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즉 전통적인 것이나 새로운 것을 고루 알아야 스승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韋編三絶 위편삼절
풀이 공자가 주역을 즐겨 읽어 책의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음. ⇨ 책을 열심히 읽음을 이르는 말
용례 그는 韋編三絶이라는 표현처럼 그 시집을 너덜너덜할 정도로 읽고 또 읽었다.
유래 “사기(史記)”의 ‘공자세가(孔子世家)’에 “孔子晩而喜易 讀易…韋編三絶(공자가 늦게 역을 좋아하여 역을 읽어…가죽 끈이 세 번 끊어졌다).”이라고 한 데서 비롯된 말로서 공자 같은 성인도 학문 연구를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을 한다는 비유이다. 또한, 후인들의 학문에 대한 열의와 노력을 나타내는 말로도 인용된다.
切磋琢磨 절차탁마
풀이 옥이나 돌 따위를 갈고 닦아서 빛을 냄. ⇨ 부지런히 학문과 덕행을 닦음을 이르는 말
용례 부족한 부분은 뼈를 깎는 노력으로 채우고 切磋琢磨하여 훌륭한 인재로 성장해 나가기를 바란다.
유래 원래 톱으로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며 숫돌에 간다는 뜻으로, 학문이나 수양 뿐만 아니라 기술을 익히고 사업을 이룩하는 데도 인용된다. “대학(大學)”에 보면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자르듯하고 쓸듯함은 학문을 말하는 것이요, 쪼듯하고 갈듯함은 스스로 닦는 일이다)."라고 하여 切磋는 학문을 뜻하고, 琢磨는 수양을 뜻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如切如磋 如琢如磨’에서 ‘여(如)’ 자를 뺀 것이 ‘切磋琢磨’이다.
晝耕夜讀 주경야독
풀이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글을 읽음. ⇨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꿋꿋이 공부함을 이르는 말
용례 그녀는 학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낮에는 직장에서, 밤에는 대학원을 다니며 晝耕夜讀하는 학구파이다.
晴耕雨讀 청경우독
풀이 날이 개면 논밭을 갈고 비가 오면 글을 읽음. ⇨ 부지런히 일하며 공부함을 이르는 말
용례 그는 오랜 세월 고향에서 晴耕雨讀의 생활을 하였다.
汗牛充棟 한우충동
풀이 짐으로 실으면 소가 땀을 흘리고, 쌓으면 들보에까지 참. ⇨ 가지고 있는 책이 매우 많음을 이르는 말
용례 청소년들은 독서에 매진하여 汗牛充棟이나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의 옛말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유래 중국 당(唐)나라의 문장가 유종원(柳宗元)이 “육문통선생묘표(陸文通先生墓表)”라는 글에 다음과 같이 썼다. "공자가 “춘추(春秋)”를 지은 지 1,500년이 되었고 “춘추전”을 지은 사람이 다섯 사람, 온갖 주석을 한 학자들이 1,000명에 달한다. … 그들이 지은 책을 집에 두면 대들보까지 차고 밖으로 내보내면 소와 말이 땀을 낸다(其爲書處則充棟宇 出則汗牛馬)". 여기서 말한 충동우(充棟宇) 한우마(汗牛馬)가 변하여 '汗牛充棟'이 되었다.
螢雪之功 형설지공
풀이 반딧불ㆍ눈과 함께 하는 노력 ⇨ 고생을 하면서 부지런하고 꾸준하게 공부하는 자세를 이르는 말
용례 그는 螢雪之功으로 학업에 매진하여 무려 열 개의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유래 후진(後晉)의 이한(李瀚)이 지은 “몽구(蒙求)”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손강(孫康)은 집이 가난하여 기름을 살 돈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늘 눈빛에 책을 비추어 글을 읽었다. 나중에 그는 어사대부(御史大夫)에까지 벼슬이 올랐다. 또 진(晉)나라의 차윤(車胤)이란 사람은 기름을 구할 수가 없어 여름이면 수십 마리의 반딧불을 주머니에 담아 그 빛으로 밤을 새우며 책을 읽어 마침내 이부상서(吏部尙書)가 되었다고 한다. 이 고사에서 비롯되어 어려운 처지에서 공부하는 것을 '螢雪之功' 또는 단순히 '螢雪'이라고 한다.